세계 의학계가 주목하는 물질, 치매 치료 패러다임 바꾸나

[류장훈 기자] 입력 2020.04.27 09.03

국내 임상 3상 예정인 ‘GV1001’

‘100세 시대에 암보다 무서운 병’ ‘영혼을 갉아먹는 병’ ‘서서히 죽어가는 병’. 치매를 지칭하는 수식어들이다. 그만큼 치매를 바라보는 시각엔 현대인의 두려움이 담겨 있다. 모든 국가가 치매를 향후 극복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삼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12분마다 한 명씩 새로운 치매 환자가 발생하고 60분마다 치매 환자가 사망한다는 국내 연구결과도 있었다. 그동안 인류가 연장해 온 수명을 깡그리 무의미하게 만드는 게 바로 치매(알츠하이머병)라는 존재다. 그런데 최근 몇십 년간 확고부동했던 이 명제에 희망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다. 젬백스앤카엘의 신약 후보 물질 ‘GV1001’을 통해서다.

지난 17일 서울에서 열린 ‘제1차 젬백스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 자문위원회’에서 세계 석학들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GV1001’의 성공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김동하 객원기자

 

세계적 석학들 향후 국내외 임상 협의
 
지난 17일 오후 11시. 서울 상암동DMS빌딩 제3 스튜디오에서는 한국·미국·네덜란드·프랑스 등 4개국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4개국 5개 지역 연결 화상회의가 진행됐다. 이날 회의는 향후 의학계의 알츠하이머병 연구 방향과 임상 진행 상황, GV1001의 작용 기전 및 향후 진행될 임상시험(국내 3상, 미국·유럽 2상)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제1차 젬백스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 자문위원회’다. 당초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때문에 온라인 회의로 대체됐다.
 
이날 참석한 해외 석학들은 저마다 GV1001에 대해 큰 기대감을 표했다. 미국 클리블랜드클리닉 신경연구소 제프리 커밍스 교수는 “GV1001은 다양한 타깃에 작용하는 물질”이라며 “매우 성공적인 알츠하이머병 치료 약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치매 증상 평가 척도인 신경정신행동검사(NPI)의 창시자다. 미국 버틀러병원 스티븐 살로웨이 기억노화센터장은 “새로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 논의가 활발한 시기에 GV1001은 유망한 약물”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의 필립 쉘튼 알츠하이머센터장은 “논문 발표, 유럽 임상 등 향후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기꺼이 돕겠다”고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세계적 석학들이 GV1001에 주목하는 이유는 뚜렷하다. 2003년 이후 알츠하이머병 신약 개발은 맥이 끊긴 상태다. 수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줄줄이 실패했다. 한 다국적 제약사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 포기를 선언하기도 했다. 현재 알츠하이머병에 처방할 수 있는 약이라곤 도네페질(1996)·라바스티그민(1999)·갈란타민(2001)·메만틴(2003) 등 네 가지가 전부다. 이런 상황에서 2상 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친 ‘복합 기전’의 약물이 주목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기존 약물은 작용 기전이 하나에만 맞춰졌다. 게다가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해 기억과 인지 기능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기억·인지 기능에서 중요한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분해를 막거나(도네페질·라바스티그민·갈란타민), 뇌 신경세포를 손상하는 글루타메이트 활성을 억제해(메만틴) 증상을 해결한다. 증상 완화에 급급한 땜질식 처방인 셈이다.
 
하지만 GV1001은 지금까지 원인으로 지목된 것들을, 그것도 한꺼번에 조절한다. 뇌 신경세포 표면의 베타아밀로이드의 침착, 뇌 신경세포 안의 타우 단백질 엉킴, 신경 염증을 막아주고 여기에 항산화·항노화 작용까지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신경전달물질을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내성이나 부작용 우려도 덜었다. 단순히 증상 완화가 아닌 질환 발생 기전에 접근한 것이다. 알츠하이머병에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세계 최초의 신약으로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중기 이상 치매 환자에서도 효과 확인
 
이뿐만이 아니다. 초기 치료 일변도인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사이에 GV1001은 중기 이상인 환자에서 효과가 확인됐다. 도네페질을 3개월 이상 복용한 중등도에서 중증의 알츠하이머병 환자 96명을 대상으로 국내 12개 의료기관에서 진행된 2상 임상시험을 통해서다. 연구진이 도네페질 단독 투여군, 도네페질과 GV1001 0.56㎎ 투여군, 도네페질과 GV1001 1.12㎎ 투여군으로 나눠 6개월간 피하에 투여해 효과를 분석한 결과, 단독 투여군은 치매 평가지표(SIB)가 7.23점 감소한 반면 GV1001 1.12㎎ 투여군은 이보다 7.11점 높았다. SIB는 낮을수록 치매 상태가 심하다는 뜻이다. 이 결과는 전문시설에서나 케어할 수 있는 환자가 가정에서 케어할 수준으로 유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GV1001은 췌장암 치료제로 개발되기 시작한 약이다. 당시 임상 데이터 분석 시 남성 환자에서 전립샘비대증 개선 소견이 확인돼 전립샘비대증 치료제 가능성을 확인했고, 전립샘비대증 치료제 허가 준비를 위한 신경독성시험에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가능성까지 확인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만큼 GV1001은 잠재력을 지닌 물질이다. 이 잠재력에 세계 의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중·말기 치매 환자 대상 임상 2상, 미쳤다는 소리 들었지만 성공”
 인터뷰 송형곤 젬백스앤카엘 대표

세계적인 전문가들이 ‘GV1001’에 기대감을 표하고 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다. 대규모 임상시험인 임상 3상을 통과해야 하고 해외 임상시험도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한다. 이번 자문위원회는 그 방향을 세우고 신약 개발을 가속하는 이정표다. 젬백스앤카엘 송형곤(52·사진) 대표를 만나 GV1001 개발의 향후 계획에 대해 들었다.
 
이번 자문위원회를 평가한다면.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 회사 정도의 규모에서 신약 개발을 위해 이렇게 자문위원회를 꾸리는 곳은 거의 없다. 참석했던 분들도 적잖이 놀란 눈치다.
 
자문위원회를 꾸리게 된 배경은. 
“고민을 많이 했다. 우선 힘들고 중요한 일일수록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결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봤다. 특히 세계적 석학, 대가의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맞았던 것 같다. 그분들은 공통으로 ‘제대로 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를 만들자’는 하나의 목표를 가진 분들이다. 그리고 우리 임상시험 결과를 흥미롭게 지켜봐 왔다.”
 
국내 2상 임상 결과의 의미를 덧붙인다면.
“SIB 7점 이상의 차이는 생각보다 큰 수치다. 세계 석학들이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치매는 초기에서 중기로 진행하는 데 수년이 걸리고 중기를 넘어가면 환자는 급격히 악화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눈에 띄게 상태가 나빠진다. 환자와 가족에겐 집에서 케어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완전히 다른 얘기다.
 
임상 3상을 통과해야 하는데.
“알츠하이머병 치료제가 실패한 것이 대부분 3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진행해 온 전임상, 임상시험으로 보면 성공할 것이라고 본다. 임상 2상을 초기가 아닌 중기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미쳤다는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성공했고 좋은 결과를 얻었다.”
 
코로나 사태로 일정이 지연되는 부분이 있는데.
“안타까운 부분이다. 국내 임상 3상을 위한 과정 자체가 딜레이된 상태다. 미국 2상의 경우 임상 진행을 위한 협의를 활발히 진행하던 중 코로나 사태가 터져 실질적인 업무가 거의 정지됐다. 올해 안에는 돌입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는 6~7월에 국내 3상 임상 시험 허가 신청을 할 계획이다. 하반기에 허가를 받고 올해 안에는 첫 환자를 모집하고 싶다.”
 
GV1001의 성공을 위한 전제조건은 뭐라고 보나.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급하다고 계단 두세 개씩 한꺼번에 올라가면 아래로 뚝 떨어질 수 있다. 단계마다 필요한 근거를 만들어 차근차근 넘어가겠다. GV1001을 성공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과 기다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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