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나는 게 죄? 코로나 ‘회색지대’ 환자 갈 곳이 없다

[박정렬 기자] 입력 2020.03.20 17.25

코로나19 사태에 일반 발열 환자

충북 지역에 거주하는 암환자 A씨는 수술 후 항암방사선치료를 받던 중 고열 증상으로 인근 종합병원을 찾았다. 유명 대학에서 운영하는 데다 국민안심병원이라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일 수 있다며 그를 선별 진료소로 보내고 “바이러스 검사가 나오기 전까지는 응급실도 들어올 수 없다”고 안내했다.
 
A씨는 본인이 항암방사선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을 의료진에게 알렸다. 혈액 검사 결과 실제 백혈구(호중구) 수치가 떨어져 있었다. 독한 항암제가 체내 면역기능을 떨어트려 생기는 ‘호중구 감소증’일 가능성이 컸다. 2차 감염으로 이어질 경우 자칫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병이다. 하지만 이를 보고도 병원은 “검사에서 음성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치료가 어렵다”며 “몸이 안 좋다면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 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발열의 원인은 다양하다. 의학적으로 38도 이상 고열은 코로나19뿐만 아니라 신우신염, 요로감염, 뇌수막염 등 각종 질환을 알리는 ‘신호’다. 최근 연예인의 잇따른 사망 원인으로 알려진 패혈증도 발열이 주요 특징이다. 패혈증은 세균, 바이러스 등에 감염돼 전신 염증이 발생한 상태를 말한다. 염증이 심장, 신장, 폐 등 주요 장기에 퍼지면 다발성 장기 부전(여러 곳의 장기 손상)으로 자칫 생명을 잃을 수 있다. 패혈증 환자가 한 시간 내 항생제를 투여하면 80%가 생존하지만 6시간이 지나면 생존률이 30%로 급감한다. 대표적인 응급질환에 속한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발열 환자에게 ‘의심의 덫’을 씌우면서 응급 발열 환자가 적절한 처치를 못 받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고열의 원인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 확인돼야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형편이다. 18일 숨진 17세 A군의 경우, 폐렴 등에 의한 고열로 경산중앙병원을 찾았지만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상태가 급격히 악화해 영남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지고 말았다. A군은 사후 진행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검사에서 최종 음성 판정을 받았다.
 
감염 관리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병원은 발열 환자의 치료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  한 대학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의사가 확진 판정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환자를 입원시키는 것은 부담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됐을 때 병원 일부 폐쇄와 이로 인한 환자 감소, 그리고 의료진과 다른 환자의 감염 등이 고민되기 때문”이라며 “규모가 작은 병원일수록 이런 부담감은 더욱 크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다수의 의료기관이 감염 관리시설을 갖추고 있지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대학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음압병상 등 감염환자를 위한 격리 시설은 공조 시스템이 핵심인데, 기존 공간에 이를 적용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며 “중소병원에서 감염병 전담 인력을 따로 운용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전했다.
 
바이러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다른 병원으로 환자를 보내기도 어렵다. 경산중앙병원 관계자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상급병원에서 잘 받아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회색지대’인 일반 발열 환자의 ‘골든 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서울지역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 전후 병상 가동률은 비슷하다”며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 격리시설에서 응급처치는 가능해도, 코로나19가 아니면 입원할 병상이 부족해 다른 병원에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코로나19 환자만 집중적으로 보다 보니 코로나19가 아닌 발열 환자는 역차별을 받는다"며 "의료기관에서  시스템을 정비하는 동시에 정부가 부족한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컨트롤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ung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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