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형 간염, 글로벌 기준 변했는데 국가검진 도입 불통(不通)은 여전

[김도영] 입력 2019.09.30 10.15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김도영 교수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 장수국에 속한다. 이유 중 하나가 건강보험제도다. 국가가 지원하는 검진을 통해 미리 질병을 찾아내고 조기에 치료 가능한 것이 국민건강 증진에 큰 도움이 된다. 국가건강검진은 질병이나 대상에 따라 지원 여부와 횟수 등에 차이가 있다. 최근 검진 항목에 폐 컴퓨터단층촬영(CT), 20·30대 검진 등이 추가되면서 지원이 크게 늘었다.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검진 항목을 추가한 것엔 동의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오랫동안 필요성을 강조한 검진이 빠진 것은 아쉽다. 대한간학회와 전문가들은 질병의 위중성이나 감염 확산 등을 고려해 법정 제3군 전염병인 'C형 간염'을 국가검진에 포함할 것을 수년째 제안하고 있다. 2016년 보건복지부가 감염병 예방 관리 대책을 발표하고 시범사업까지 진행했지만 번번이 유병률 미달 이유로 문턱에서 좌초됐다. 특히 그 이유가 유병률 기준이라는 점은 유병률 5%에 미달하지만 국가검진에 포함된 B형 간염, 신장 질환, 간 질환 등과의 형평성 때문에도, 감염병 관리 차원에서도 허점으로 남는다.
 

유병률 5% 미달 이유로 국가검진 도입 좌초
C형 간염의 국내 유병률은 0.7~1% 내외로 추산된다. 우리나라 국가건강검진은 유병률 5%를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이 원칙은 2011년 제정된 것으로 1968년 만들어진 세계보건기구(WHO)의 일반 원칙을 참고했다. 이때는 C형 간염이 발견되기도 전이다. 우리나라는 8년 전 제정된 구시대적인 원칙을 고수하지만 WHO의 기준은 업데이트된 지 오래다. WHO는 2017년 검진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기존 고위험군 검진뿐 아니라 전 국민 검진 시 유병률 기준을 2% 이상이거나 5% 이상으로 권고했다. 또한 감염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출생 연령 대상에서도 검진할 것을 전 세계 각국 보건당국에 권고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유병률이 0.07%만 돼도 전 인구 항체 검사가 비용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이 결과는 올해 9월 미국 질병예방특별위원회(USPSTF)에서 C형 간염 검진 가이드라인을 6년 만에 개정 예고한 근거가 됐다. 항체 검사를 기존 고위험군과 베이비부머 대상에서 18세 이상 79세 이하 모든 성인을 대상으로 전격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필자나 국내외 간 질환 전문가들은 C형 간염 항체 검사의 비용 효과성에 대해 수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했다. 이를 근거로 40대 이상 한 연령의 인구 대상으로 국가건강검진 시스템에서 항체 검사를 진행하면 비용 효과적으로 C형 간염의 진단을 통한 예방 관리가 가능하다는 제안을 해왔다. 이에 대해 예방의학 전문가 등 타과 전문의들의 의견도 다르지 않다. 최근 내과·가정의학과 등 전국 의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C형 간염 인식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90% 이상이 C형 간염 국가검진 도입 필요성에 동의했다. 
 
예방 관리에 초점 맞춘 정부 대책 절실
수많은 의사가 C형 간염 국가검진을 요구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C형 간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퍼질 수 있는 감염병이다. WHO의 연구결과, 간 질환으로 인한 사망의 절반가량(48%)은 C형 간염이 원인이다. 또한 C형 간염의 조기 치료는 다른 간 질환 환자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내 간이식 사례의 5~10%는 C형 간염에서 기원한 간 경변, 간암 등으로 인해 발생한다. 만약 이런 환자들이 미리 C형 간염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었다면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공공재로 분류되는 ‘이식 간’, 즉 간 이식의 기회를 다른 환자에게 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2015년 다나의원 집단 감염 사태 등 수차례 심각한 C형 간염 집단 감염을 겪었다. 이후 주사기 재사용 금지, C형 간염 전수 조사 등의 조치가 시행됐지만 C형 간염에 대한 정부 대책은 여전히 예방 관리와는 거리가 멀다. C형 간염은 문신이나 피어싱, 혈액 검사 없이 혈액 매개 치료가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수많은 현장에서 감염 전파의 위험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현 정책대로 유병률 5% 기준에 부합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충분히 막을 기회를 또다시 놓치고 사후약방문식으로 관리하겠다는 ‘무(無)대책’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우리는 연간 1.5조원 규모의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효율적인 전 국민 국가건강검진 시스템을 자랑하는 나라다. 여기에 C형 간염을 연간 약 30억원으로 고위험의 한 연령을 정해 3000원대 항체 검사로 한 번에 국가검진을 진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가검진이 아닌 별도의 시스템을 구축해 일부 제한된 국민만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려는 작금의 대책은 비용 효과성 측면에서 보면 비효율성이 더 높다. 어떤 것이 진짜 효율인지 따져봐야 한다. 증상이 없고 감염 경로가 단기간 쉽게 드러나기 힘든 질환이라고 해서 더는 정부가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C형 간염의 위중성을 간과하거나 그 감염 위험을 방치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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