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대사수술 효과 15년 이상 지속”

[박정렬 기자] 입력 2019.09.27 10.35

호주·한국 비만대사외과학회장 대담…안전성 담보하는 인증제 운용

비만 인구 증가 속도가 매섭다. 20년 전 성인 4명 중 1명이던 비만 인구는 이제 3명 중 1명(36.6%)에 달할 정도로 급증했다. 각종 만성질환의 원인이 되는 고도비만 유병률은 약 4.7%로 65만 명에 달한다. 2030년에는 이 수가 130만명을 넘어설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고도비만 환자는 음식량을 줄여도, 열심히 운동해도 살을 빼기 어렵다. 호르몬 등 체중 조절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고장 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고혈압,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에서 암 등 다양한 질환에 시달리면서 신체는 물론 정신건강마저 피폐해진다. 고도비만의 유일한 해결책은 위의 크기를 줄이고, 호르몬 체계를 교정하는 수술(비만대사수술)뿐이다. 하지만 ‘수술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수준은 아니다’ ‘수술로 인한 체중 감량 효과를 확신할 수 없다’ ‘부작용이 걱정된다’는 이유 등을 들며 선뜻 치료에 나서지 않는 환자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

호주·뉴질랜드 비만대사외과학회 마이클 탈봇(Michael Talbot) 회장과 대한비만대사외과 이주호 회장이 비만대사수술의 진료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비만대사수술에 대한 여러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일 서울에서 열린 대한비만대사외과학회 국제 학술대회에서 호주·뉴질랜드 비만대사외과학회 마이클 탈봇(Michael Talbot) 회장과 대한비만대사외과학회 이주호 회장을 함께 만났다. 이들은 “비만대사수술은 안전성이 검증됐고, 비만과 이로 인한 만성질환을 관리할 수 있는 최선의 치료법”이라며 “한국만큼 비만 치료에 체계적이고 편리한 의료 시스템을 갖춘 곳은 많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호주에서 비만대사수술 역사는 한국보다 길다. 그런 만큼 장기 연구 데이터가 있을 텐데 비만대사수술로 인한 체중 감량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마이클 탈봇 학회장) 호주에서 진행한 장기 연구 결과, 비만대사수술은 15년 이상 체중 감량 효과가 유지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당뇨병 환자의 경우 2~3년 내로 비만대사수술의 비용이 상쇄될 만큼의 이익이 돌아가는 것으로 파악된다. 당뇨병 환자가 수술을 받으면 당뇨약을 끊을 확률이 50% 이상 높아지고 당뇨병으로 인한 합병증 위험도 낮출 수 있다. 다시 말해 수술을 받지 않을 경우 2~3년 간 비만, 당뇨병 치료에 소모되는 비용이 비만대사수술 비용과 동일한 수준이란 의미다."

-합병증 등 부작용 위험은.
"(마이클 탈봇 학회장) 수술 부작용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영양 관련 부작용이다. 비만대사수술은 음식 섭취량 감소로 이어지는데 이때 고열량, 저영양 음식만 섭취하면 비타민과 단백질, 무기질 부족이 발생할 수 있다. 환자들에게 고영양, 저에너지 음식과 비타민 보충제를 섭취하도록 권하는 이유다. 두 번째는 수술 후 해부학적 변화로 인한 위산 역류 현상과 궤양 등이 나타날 수 있다. 흡연이나 음주를 하는 경우 이럴 위험이 더 크다. 비만대사수술은 여러 방법이 존재한다. 규모가 작고 단순한 수술은 치료 효과가 작은 반면 부작용 위험이 낮다. 반대로 규모가 크고 복잡한 수술은 효과가 큰 대신 부작용 위험도 높다. 환자의 의지가 중요한 지점이다. 치료 의지가 강하면 부작용이 있어도 효과가 큰 수술을 선택하는 식이다. 출혈, 감염 등 수술 부작용은 2% 미만으로 통제할 수 있다.

(이주호 학회장) 비만대사수술의 합병증과 사망률이 담낭절제수술, 충수절제술(맹장수술) 등 일반인이 흔히 하는 수술보다 현저히 낮다는 보고가 다수다. 비만대사수술은 맹장수술보다 단순하고 담낭수술보다 위험성이 낮은 안전한 수술이다.

(마이클 탈봇 학회장) 국가에 상관없이, 비만대사수술의 목표는 단순히 체중 감소가 아니라 당뇨병, 심장질환, 뇌졸중과 같은 동반 질환의 부담을 낮추는 데 있다. 심장질환이나 뇌졸중 환자는 치료를 위해 수술해야 한다고 여긴다. 비만을 방치하면 훨씬 위험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는 데도 유독 한국인은 비만대사수술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수술을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하는지에 대한 관점의 차이라 생각한다. 한국 외과의사의 수술 실력은 세계적으로도 높이 평가받는다. 전 세계 외과의사들이 트레이닝을 위해 한국을 찾지 않나. 비만대사수술에도 이런 뛰어난 수술 실력이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 생각한다."
 

호주·뉴질랜드 비만대사외과학회 마이클 탈봇 회장

-비만대사수술 후 해부학적인 부작용은 피할 수 없는 문제인가.
"(이주호 학회장) 그렇다. 비만대사수술을 받으면 음식을 덜 먹게 되고 먹어도 소장 통과량이 줄어서 영양 흡수율이 감소한다. 단백질 부족부터 장기적으로 비타민 등 미네랄 부족이 나타날 수 있다. 이를 조절하면서 치료 효과가 지속되도록 돕는 것이 주요 목표다. 크게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한다. 하나는 수술 후 관리, 또 하나는 인증제도다."

-수술 후 관리의 중요성을 설명해준다면.
"(이주호 학회장) 수술을 포함한 모든 의료행위는 부작용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치료 효과를 높일 방안을 찾는 것이 의료진의 역할이다. 수술 후 관리는 이 과정에서 찾아낸 해답이다. 비만대사수술은 그 자체가 생활습관의 변화를 끌어낸다. 흔히 ‘세트포인트(체중조절점)’라는 용어를 쓴다. 100kg의 환자는 수술을 받기 전까지 자신이 100kg란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비만대사수술로 단기간에 체중이 확 빠지면 ‘100kg이었을 때 어떻게 살았지?’를 느끼고 이를 동기부여 삼아 생활방식에 보다 적극적인 변화를 준다. 식습관이나 좋아하는 음식이 전반적으로 바뀐다. 비만 치료에 실패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활습관의 변화를 이뤄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수술은 마술이 아니다. 수술 후 식생활과 행동습관 등 그 사람을 어떻게 관리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최근 이를 위해 다학제적 진료가 주목받는다. 수술부터 사후관리까지 심장내과, 정신과, 마취과, 소화기내과, 영양사, 코디네이터 등이 팀을 이뤄 한 명의 환자를 집중적으로 관리한다.

(마이클 탈봇 학회장) 이주호 학회장의 관점에 동의한다. 비만대사수술은 환자의 주체적인 행동 변화를 끌어낸다. 환자들이 지속해서 긍정적인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유지할 수 있게 추적 관찰하고 돕는 것이 의료진의 역할이다. 호주에서는 비만대사수술을 받는 환자를 암 수술을 받은 환자에 준해 관리한다. 환자 가족과 수술을 진행하는 외과의사, 가정의학과, 정신과, 물리치료사, 영양사, 운동 관리 및 행동 조정 전문가가 팀을 꾸린다."
 

대한비만대사외과학회 이주호 회장

-인증제도는 어떻게 운용되나.
"(이주호 학회장) 비만대사수술의 효과와 안전성을 담보하려면 우선 수술의 질적 향상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바로 인증제도다. 학회 차원에서 수술을 진행하는 외과의사의 소양과 비만대사수술에 대한 경험, 학회에서 공유하는 트레이닝 시스템이나 연수 강좌 및 학회 참여도 등을 종합 평가한다. 즉, 수술 뿐만 아니라 수술에 연관된 지식을 갖췄는지 확인하고 학회에서 인증서를 주는 것이다. 의료기관에는 보다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한다. 의료기관에 대한 인증과 함께 의료진의 능력, 경험, 태도 등을 평가한 인증의 제도가 정착되면 수술의 과용 및 남용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 본다. 대한비만대사외과학회 회원 의사 중 60명 이상, 10여 개의 병원이 이미 인증을 받았다. 대한비만대사외과학회 홈페이지를 통해 인증 의료기관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런 인증제도에 추진력이 생기려면 인증에 따른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 고민하는 부분이다."

-한국에서는 올해부터 일부 환자를 대상으로 비만대사수술에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다.
"(마이클 탈봇 학회장) 비만대사수술은 투자비용 대비 건강개선 효과가 크기 때문에 보험재정을 운영하는 정부 입장에서도 효율적인 비만 치료라 할 수 있다. 호주의 의료보험시스템은 크게 세 가지인데 주정부(State Government)가 운영하는 ‘주병원(state hospital)’과 연방 정부(Federal Government) 의 ‘연방 헬스케어 시스템’, 마지막으로 ‘개인 보험’이 있다. 만약 환자가 개인보험에 가입했다면 비만대사수술을 쉽게 받을 수 있다. 반면 비가입자의 경우 주정부가 병원비, 연방 정부가 약물 및 장애와 관련된 비용을 담당하는 복잡한 시스템을 거쳐야 한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의 건강보험은 환자 입장에서 훨씬 편리하고 선진적인 시스템이라 생각한다.

(이주호 학회장) 호주와 비교해 한국은 건강보험 시스템이 굉장히 단순하다. 모든 국민이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의무이고, 전 세계적으로 이런 나라가 많지 않아 미국 등에서도 이 시스템을 배워가려고 한 바 있다. 비만, 당뇨병은 지속해서 의료비를 투입해야 하는 만성질환이다. 비만대사수술은 초기 투자비용은 많을지언정 이후 장기적으로 당뇨병이나 비만으로 인한 의학적 치료비는 감소해 훨씬 비용 효과적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체중 감량이나 당뇨병 호전에 대한 장기 데이터가 부재한 상황이다. 앞으로 이런 데이터를 차차 만들어 갈 계획이다. 지난해 20곳 이상의 의료기관이 참여한 대규모 임상시험 결과 비수술적 치료(약물, 생활습관 교정, 식이요법 등)와 수술치료는 효용성에 큰 차이를 나타냈다. 곧 연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데이터 축적과 글로벌 네트워크 형성, 인증제도를 통한 비만대사수술의 질적 향상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한국형 비만대사수술’을 완성해나갈 것이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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