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 수술하면 70% 완치되는데…"정부 지원 없어 대기 시간만 수십년"

[박정렬 기자] 입력 2019.08.09 17.02

대한뇌전증학회 "정부가 치매의 100분의 1만이라도 지원해주길"

치매, 뇌졸중과 더불어 3대 신경계 질환으로 불리는 뇌전증 치료가 장비 부족 등의 문제로 지연되고 있다는 비판이 의료계 내부에서 제기됐다.


대한뇌전증학회는 9일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연구소 용역연구에 대한 중간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약물난치성 뇌전증 환자 4000명 이상이 매년 검사를 받지만, 실제 수술을 받는 경우는 300건도 안된다"며 "한국의 난치성 뇌전증 치료는 후진국 수준으로 의사들도 정부 지원이 너무 없어 절망감에 빠지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대한뇌전증학회에 따르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토대로 추정된 국내 뇌전증 환자 수는 약 36만명에 달한다. 이 중 3분의 1인 약 10만명이 약물로 완전히 증상이 조절되지 않는 약물난치성 뇌전증으로 분류된다. 특히, 약물 난치성 뇌전증 환자 중 잦은 경련 등으로 인해 수술이 급한 중증 약물난치성 뇌전증 환자는 3만7225명인 것으로 분석됐다.

항경련제로 증상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약물난치성 뇌전증 환자는 수술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다행히 국내 뇌전증 수술의 완치율은 평균 71.6%로 높은 편이다. 이번 조사에서 검사를 통해 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된 뇌전증 환자(수술 대기 환자)는 2만2335명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뤄지는 뇌전증 수술은 연간 300건도 채 못되는 실정이다. 학회는 "인력 부족 보다 뇌전증 수술에 꼭 필요한 장비들이 한국에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대한뇌전증학회는 "약물난치성 뇌전증이 유일한 치료법은 뇌전증 수술이고 생명을 구하는 치료"라며 "뇌전증 수술의 지원과 활성화가 시급한 이유"라고 주장했다. 사진은 대한뇌전증학회 로고.

학회에 따르면 뇌전증 발생 부위를 진단하는 데 필요한 뇌자도(MEG)는 전세계에 179대가 설치, 운영되지만 국내에는 단 한대도 없다. 뇌전증 수술의 70% 이상을 책임지는 'SEEG 로봇시스템' 역시 한 대도 보유한 곳이 없다. 이 때문에 맨손으로 수술을 하다 보니 수술 시간이 2배 이상 길고 정확도도 떨어진다. 두개골을 열지 않고 조그만 구멍을 뚫어 내시경적으로 뇌전증 병소를 제거하는 '레이저 열치료 수술장비' 역시 전세계적 215대가 활용되지만 국내는 한대도 없는 실정이다.

학회는 "매년 약 2만명의 뇌전증 환자가 새로 발생하는 점을 감안하면 수술이 필요한 뇌전증 환자는 매년 1000명씩 증가하는 것"이라며 "뇌전증 수술이 연간 1500~2000건이 시행돼야 대기 환자가 주는데 이를 충족시켜도 현재 뇌전증 수술 대기 환자가 모두 수술을 받는데만 수십년이 걸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약물난치성 뇌전증 환자는 사망률이 10배 높고, 급사하는 비율은 27배 높은 점을 감안하면 사회경제적으로도 뇌전증 수술의 지원과 활성화가 시급하다는 게 학회의 주장이다. 대한뇌전증학회 관계자는 "약물난치성 뇌전증의 유일한 치료법은 뇌전증 수술이고 생명을 구하는 치료"라며 "50억원 정부 지원만 있으면 중증 뇌전증 환자들이 일본, 미국에 가지 않아도 수술을 받을 수 있다.치매 지원의 100분의 1이라도 정부 지원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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