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치매 아버지 뇌 기증한 신경과 의사

[김선영 기자] 입력 2019.02.08 17.29

두신경과 한병인 원장 일문일답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2017년 기준 노인 인구가 전체 국민의 14%를 넘는다. 이에 따라 치매·파킨슨병·뇌졸중 같은 뇌질환 발생률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뇌 질환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에 속한다. 뇌 기능 이상의 원인을 밝히고 예방·진단·치료법을 연구하려면 사후 뇌 기증이 절실하다. 최근 신경과 전문의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뇌를 기증해 귀감이 되고 있다. 대구의 두신경과 한병인 원장에게 기증 사연을 들었다.

 

-뇌 기증에 대한 평소 생각은 어땠나.
"의과대학생 시절 해부학 실습을 하면서 장기기증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이후 의사로 살아오는 동안 장기를 기증받아 생명을 연장하는 사람을 직접 보게 되면서 장기 기증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생전에 아버지께서 뇌 기증 의사를 어떻게 밝히셨나.
"아버지께 사후 뇌 기증에 참여하길 권하니 흔쾌히 허락하셨다. 2006년 2월 영문판으로 된 ‘사전의료의향서’에 서명하셨고 그 증서를 계속 보관했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께서 치매에 걸리신 지 7년쯤 됐을 때 임종에 대비해 내가 기증 신청을 하게 됐다. 사실 어머니께서도 사체 기증을 원하셨기 때문에 아버지의 사후 뇌 기증에 당연히 동의하셨다. 자녀들도 모두 동의했기에 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물론 뇌은행을 통해 뇌 기증 서약을 하는 절차도 어렵지 않았다."

-뇌 기증은 어떤 절차를 거쳐 진행되나.
"아버지께서 새벽 4시에 사망하셨다. 장례사에게 연락해 영안실을 구하고 시신을 영안실 냉동실에 모셨다. 오전 7시쯤 뇌센터의 뇌 기증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니 뇌센터에서 차를 보내줬다. 아버지 시신을 영안실에서 뇌은행으로 옮기게 됐는데 밤에는 시신을 옮기는 기사가 한 사람뿐인지 병원에서 영안실로 옮길 때도 같은 기사분이 오셨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가 사망한 직후에 시신을 병원에서 뇌센터로 바로 옮기는 게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이라도 주저 말고 뇌 기증 담당자에게 전화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뇌은행에서 반나절 정도 시간이 걸렸고 다시 영안실로 모셔 장례 절차를 진행했다. 뇌 기증을 했는지는 외부에선 전혀 알 수가 없는 구조였다. 아버지는 편안한 모습으로 이 세상과 이별하셨다. 뇌 기증으로 치매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아버지께서 새삼 큰일을 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뇌 기증을 고려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뇌 기증을 하기까지 기관에서 진행해야 하는 여러 가지 절차가 있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일찍 신청하는 게 좋다. 뇌 기증자가 사망하면 즉시 뇌 기증 담당자에게 연락해야 한다. 뇌 기증을 하는 것은 죽은 후에도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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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뇌 기증, 왜 필요한가

퇴행성 뇌질환의 증가가 사회적·경제적 문제로 부각되면서 관련 사회적 이슈를 해결하고자 뇌은행이 설립됐다. 현재 동물의 뇌 조직을 이용한 연구만으로는 인간의 뇌질환에 대한 뚜렷한 원인 규명과 치료법 제시가 어렵다. 인간 뇌 연구 자원을 이용한 연구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다.

대부분의 사람은 퇴행성 뇌 질환을 두려워한다. 결코 고칠 수 없는 병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기 때문이다. 사후 뇌 기증을 통한 뇌 질환 연구로 우리나라 뇌 건강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많은 뇌 질환은 현재까지 진단이 까다롭고 치료와 예방이 어려운 것으로 간주돼 왔다. 다행히 최근에 뇌 질환과 관련된 이상 단백질과 이들의 특성, 기능에 대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뇌 질환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만일 어떤 질환에 특별한 이상 단백질을 측정해 진단에 사용할 수 있다면 이는 퇴행성 뇌 질환의 치료기법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질병 정복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자료: 칠곡경북대병원 뇌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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