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이야기]독감 치료제 3일 써도 효과 없으면 '세균 감염' 의심하세요

[박정렬 기자] 입력 2019.01.04 17.31

#62 항바이러스제 원리와 부작용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겨울철 건강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바이러스는 독감(인플루엔자) 바이러스입니다. 특히 이번 절기(2018~19년)는 일찍 찾아온 추위 탓에 독감이 크게 유행하고 있습니다. 독감을 치료하는 약은 ‘타미플루’ 등 항바이러스제인데요, 이번 주 약 이야기에서는 독감 치료제의 작용 원리와 복용 시 주의점 등을 알아보겠습니다.
 

독감과 감기는 증상은 비슷해도 엄연히 다른 질환입니다. 병을 일으키는 원인부터 합병증 위험까지 차이가 크죠. 단순 감기와 달리 독감은 결핵이나 에이즈 이상으로 건강을 위협하는 질환입니다. 실제 유럽 연구진이 31종의 감염성 질환을 대상으로 사망률?합병증, 삶의 질에 미치는 악영향 등을 분석했더니 결핵?에이즈를 제치고 독감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Eurosurveillance, 2018).
 
특히 2세 미만, 65세 이상, 임산부, 암 환자, 만성질환자면역력이 떨어져 합병증 위험이 큰 사람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초기에 독감을 치료해야 합니다. 면역력을 갖춘 건강한 성인은 굳이 치료제를 쓰지 않아도 5~7일 정도면 독감이 자연히 낫습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면역력이 약한 주변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독감 치료제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바이러스 증식 억제해 증상 악화 막아
독감 치료제는 먹는 약인 ‘타미플루’와 흡입하는 ‘리렌자 로타디스크’, 주사로 맞는 ‘페라미플루’ 등 다양한 제형이 개발돼 있습니다. 각 성분의 화학적 구조가 달라 투여 방식은 차이가 있는데요, 치료 효과는 비슷해서 모두 1차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제형은 달라도 치료 원리는 모두 같습니다. 독감 바이러스는 ‘감염→복제→방출→재감염’의 과정을 통해 증식합니다. 정상 세포에 침투한 뒤 스스로를 복제해 수를 늘리고, 다른 세포를 추가로 감염시켜 세력을 불립니다. 이때 정상 세포가 파괴되는 ‘방출’ 단계에서 발생하는 염증?독성 물질로 고열·피로·근육통 등의 이상 증상이 나타나는데요, 독감 바이러스의 경우 감염 후 2일 이내에 증식 속도가 정점을 찍고 이후 서서히 감소합니다.
 
사람에게 감염을 일으키는 독감 바이러스 A?B형은 모두 세포에 침투하고(감염) 빠져나가기(방출) 위해 표면에 특정한 ‘열쇠(효소)’를 갖고 있습니다. 감염시킬 때는 ‘헤마글루티닌’이라는 열쇠로 세포에 들어가고, 빠져나올 때는 ‘뉴라미니다아제’라는 열쇠를 사용해 세포를 파괴하며 탈출합니다.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 리렌자 로타디스크, 페라미플루 등은 모두 뉴라미니다아제에 달라붙어 방출을 막는 방식으로 바이러스를 잡습니다. 즉, 바이러스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 아닌, 바이러스를 감염된 세포 내에 붙잡아두고 체내 면역 세포가 이를 안전하게 처리하도록 돕는 겁니다.
 

이런 작용 방식을 알면 독감 치료제의 여러 특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 독감 치료제로는 감기를 치료할 수가 없습니다. 감기 바이러스는 독감 바이러스와 달리 치료제가 달라붙는 ‘열쇠’(뉴라미니다아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독감 치료제는 증상이 나타나고 48시간 이내 투여해야 가장 효과가 큽니다. 독감 치료제를 써도 감염된 세포를 정상 세포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치료제를 써야 증상이 악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셋째, 용법·용량을 지키지 않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내성 문제입니다. 하루 두 번 먹어야 할 약을 한 번만 먹거나, 중간에 치료를 중단하면 돌연변이를 일으킨 바이러스가 더 많이 살아남고 이로 인해 내성이 발생할 위험이 커집니다. 특히, 암 환자나 장기 이식자 등 면역 저하자는 이미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라 내성이 나타나기도 쉽고, 치료 역시 까다로워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소아?청소년, 만성질환자 복용 시 주의를
독감 치료제를 사용하면 증상이 빠르게 개선될 뿐 아니라 합병증 위험도 낮출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임상시험 결과를 보면, 독감에 걸린 후 36시간 내 타미플루를 투여한 그룹은 모양?색이 같은 가짜 약을 투여한 그룹과 비교해 고열?수면장애 등 독감 증상 지속 시간이 30%가량 단축됐습니다. 기관지염?부비동염 등 독감으로 인한 합병증도 절반 이상 적게 나타났죠.
 
단, 독감 치료제 역시 다른 약과 마찬가지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타미플루 등 경구용 제제의 경우, 전신에 흡수돼 구역?구토 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보통 하루 이틀 지나면 자연히 개선되는데요, 증상이 심해 치료를 지속하기 어렵다면 빨리 흡입형이나 주사제 등 다른 제형의 치료제로 대체해야 합니다. 또 간 질환, 신장 질환, 당뇨병 등을 악화시킨다는 보고가 있어 만성질환자라면 의사와 상의해 복용량 등을 결정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흡입형인 리렌자 로타디스크 등은 구역?구토 등 전신흡수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반면 기관지 수축을 유발할 수 있어 천식?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환자 등은 가능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페라미플루 등 주사제는 사용 시 5% 이하의 환자에게 설사, 단백뇨(소변을 통해 단백질이 빠져 나오는 상태) 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주사제 성분은 주로 신장에서 대사되는데요, 만약 신장 기능이 떨어진 경우라면 의사에게 이를 알려 복용량을 조절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이 밖에도 타미플루?테라미플루를 복용하면 환각?환청 등의 이상 증상을 겪을 수 있습니다. 최근 10대 청소년이 타미플루를 복용한 후 아파트에서 추락한 사고가 발생하면서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기도 했죠. 하지만 환각 등 신경정신계 이상 행동이 타미플루 등 독감 치료제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꼭 타미플루를 복용하지 않아도 고열, 수분 부족 등 독감 자체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기 때문입니다.
 
원인이 무엇이든 독감 치료제를 복용한 후 이상 행동이 나타날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이런 신경정신계 이상 행동은 주로 소아?청소년에게 나타나고, 고층에서 떨어진 사고가 잦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소아?청소년의 경우 독감 치료제를 처방 받은 뒤 이틀 정도는 가급적 혼자 두지 말고 창문을 미리 잠가 두는 등 안전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독감 치료제를 써도 증상이 낫지 않을 때면 흔히 내성을 의심합니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이라면 그보다 이차성 세균 감염일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바이러스로 인해 손상된 세포로 세균이 침투해 폐렴?기관지염 등을 일으키는 겁니다. 만일 3일 이상 독감 치료제를 먹었는데도 증상이 개선되지 않으면 항바이러스제나 진통·해열제를 쓰기보다 병원을 찾아 정확한 진단?치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도움말: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서유빈 교수,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박소연 교수
 
※ 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약 이야기'에서 다루겠습니다.(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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