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 치료, ‘명의’보다 중요한 건 ‘명팀’

[박정렬 기자] 입력 2018.11.14 08.34

[인터뷰]고대구로병원 대장항문외과 이선일 교수

전문가들은 대장암의 증가를 ‘예고된 재앙’이라 평가한다. 햄·소시지 등 가공육과 고기 섭취의 증가, 스트레스, 신체활동 부족 등 현대인의 생활환경 자체가 대장암의 위험요인이기 때문이다. 환자가 증가하면서 3기 이상의 ‘독한 암’도 늘고 있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인근 장기나 림프절로 암이 퍼졌거나, 멀리 떨어진 장기로 전이된 환자가 각각 전체의 41.2%, 14.9%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렇다고 지레 겁먹고 치료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고대구로병원 대장항문외과 이선일 교수(사진)는 “대장암은 위장관계 악성종양 중 전이·재발한 경우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암”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위장관계 암과 다른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그런 만큼 환자와 보호자가 병원 선택과 치료 시 알아야 할 정보가 다양하다. 이선일 교수를 만나 대장암의 특성과 치료법을 들었다.
 

 질의 : 올해 대한외과학회 공식학술지에 발표한 대장 선종(선종성 용종) 연구가 화제를 모았다. 어떤 내용인가.
응답 : “현재 우리나라는 대장암 예방을 만 50세 이상에서 분변잠혈검사를 한 뒤 양성일 경우 대장내시경 등을 시행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은 1만6000여명의 결과를 분석해보니, 대장암의 ‘씨앗’인 선종이 30-40대의 10명 중 1명에서 발견됐고 특히 남성에서 여성보다 발생빈도가 높고 시기도 빨랐다. 대장 선종이 유의하게 증가하는 연령에 맞춰 생애 첫 내시경은 남자는 40대, 여자는 50대에서 시작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질의 : 대장암 조기 발견이 중요한 이유는.
응답 : “내시경 검사 중 용종이 발견되면 대부분 즉시 제거한다. 크기가 2cm 미만이면 용종 절제술 등 내시경적 시술로 보통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뒤늦게 발견해 크기가 커졌거나 점막하층 이상 침윤되면 외과적 수술을, 다른 장기로 전이됐다면 항암치료 후 수술 등의 치료법을 적용해야 한다. 대장암 증상은 빈혈과 혈변, 변비·설사 등 배변습관의 변화, 복통 등이다. 하지만 증상이 나타나 병원을 찾는 경우 이미 20% 가량은 간·폐 등에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다. 뒤늦게 발견할수록 치료가 어렵고 환자 부담도 그만큼 크다. 사전에 검사하고 대처하는 것이 가장 좋다.”
 질의 : 대장암에 다학제 진료가 활발히 이뤄지는 이유는 ‘독한 암’이 많기 때문인가.
응답 : “ 다학제 진료는 종양혈액내과, 영상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핵의학과, 외과 등 암을 다루는 각 진료과가 모여 최적의 치료법을 결정하는 방식을 말한다. 보통 수술과 항암 치료의 경계에 있는 환자, 즉 암이 전이됐거나 재발한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다. 대장암은 현재 위장관계 암 중에서 전이·재발할 때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암이다. 설령 치료가 어려운 말기라 해도 항암 치료와 수술을 반복해 완치를 바라볼 수 있다. 그런 만큼 단계별로 다학제 진료를 열어 최적의 치료법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장암의 치료에서 ‘명의’보다 ‘명팀’이 더욱 각광받는 이유다.”
 질의 : 말기 대장암에서 적극적인 치료가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이유는.
응답 : “ 다른 암과 다른 대장암의 특징 때문이다. 첫째, 대장암은 수술로 뗄 수 있는 곳에 암이 전이되는 경우가 많다. 뼈나 뇌처럼 수술이 어려운 부위에 암이 전이되는 경우가 4% 미만에 그친다. 간, 폐 순으로 전이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전통적인 절제술과 항암 치료로 암 완치가 가능한 기관들이다. 둘째, 표적 치료제의 효과가 크다. 2000년대 들어 대장암을 정밀하게 타격하는 표적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과거에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다발성 혹은 크기가 커진 전이암 환자도 항암치료 후 병소가 작아져 치료 가능한 경우가 늘었다.”
 

고대구로병원 대장항문외과 이선일 교수가 대장암 치료을 설명하고 있다.


 질의 : 전이·재발암 환자의 치료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누구인가.
응답 : “ 4기 대장암 환자는 치료과정 중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는 대장보다 간이나 폐 등 전이 부위를 치료하는 간담췌외과·흉부외과의 역할이 대장항문외과보다 훨씬 중요하다. 전이암 환자의 추가 수술이 대부분 대장보다 전이한 기관의 암을 대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들 진료 과가 전이암의 치료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서는지에 따라 치료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질의 : 다학제 진료에 대한 지원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응답 : “ 전이성 대장암 환자의 경우 사용할 수 있는 항암제의 종류가 정해져 있다. 이에 대한 보험 적용은 컴퓨터영상촬영(CT) 등을 통한 횡단면 영상을 기준으로 하는 항암반응성 평가에 좌우된다. 그러나 전이·재발암 환자를 치료하는 데 이런 단순한 평가 방식이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항암 치료 중 환자의 면역력이 떨어져 감염 등의 문제가 생기면 항암 치료를 중단하기도 한다. 이후에 항암반응성 평가를 하면 암이 커져 있기 마련인 데, 이때는 결과적으로 항암 치료를 해도 암이 커지니 항암제 효과가 없다는 식으로 돼 해당 약제는 보험 적용이 안 된다. 말기 대장암은 단순 평가로는 알기 힘든 복잡한 임상 특징이 나타날 수 있다. 항암제 사용에 대한 보험적용이 다학제에 참여하는 의료진의 결정에 따라 더욱 포괄적으로 적용될 필요가 있다.”

질의 : 대장암을 진단받은 환자가 병원을 정할 때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할까.
응답 : “ 3기 이하 대장암은 수술 결과가 상향 평준화돼 있다. 대장암 수술의 기본원칙이 확립된 지 이미 40년이 넘는다. 지금은 복강경이나 로봇수술이 발달하면서 병원별로 기술적인 차이도 그리 크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명의’를 찾기보다 항암 치료와 추적 관찰이 쉬운 곳, 즉 주거지와 가깝고 가족의 지지를 받기 편한 곳에 있는 병원을 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가장 안 좋은 것이 수술은 A병원, 항암치료는 B병원, 추적관찰은 C 병원에서 하는 식이다. 의사는 수술을 집도하는 동시에 향후 집중 관찰해야 할 영역을 머릿속에 담는다. 초음파나 CT로 볼 땐 괜찮은데, 실제 수술 중에 눈으로 볼 때 암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그 부분을 한 번이라도 더 체크하게 된다. 각각의 과정이 다른 병원에서 이뤄지면 일관성 있는 치료가 이뤄지기 힘들다.”
 질의 : 향후 계획은.
응답 : “ 대장암 다학제 팀의 역량을 연구 쪽까지 확대하고 있다. 현재 대장암 다학제 팀은 내외과가 함께 차세대 항암제를 비롯한 천연물 기원의 항암치료 보조 약물,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4기 대장암 환자의 치료지침과 생존예측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고 있다. 4기 대장암 환자가 희망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생존율을 향상하기 위한 방안을 끊임없이 찾아 나갈 계획이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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