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이야기]보약 과연 체질따라 처방 다를까?

[류장훈 기자] 입력 2018.11.09 15.39

#55 보약 개념 바로알기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일반적으로 약은 질환을 치료하는 데 쓰입니다. 질환에 따른 증상을 개선하는 목적으로도 사용되죠. 한마디로 어디가 아파야 쓰는 것이 약입니다. 하지만 한의학에서는 조금 다른 차원으로도 약을 씁니다. 바로 '보약(補藥)'이라는 개념입니다. 이번 약 이야기에서는 그 동안 주로 다뤘던 (양)약이 아닌 전통 한의학에 있는 개념인 보약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흔히 보약이라고 하면 '기를 보하는 약' '기운이 달릴 때 먹는 약' 정도로 알고 있는데요. 정확한 개념은 '몸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한약'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는 것을 목표로 하죠.
 
사람은 살다 보면 질병의 상태는 아니지만 피로감, 무기력, 체력 저하, 집중력 저하, 소화 불량 등 전반적인 신체 기능이 저하된 상태를 느끼게 되는데요, 바로 이때 보약이 필요한 때입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보약은 대체 어떤 방식으로 처방이 이뤄지는지일 겁니다. 한의학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게 '사상체질'이라 이에 따라 처방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많을텐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아닙니다.
 

부족한 부분 따라 달라지는 네 가지 처방
보약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약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바로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 상태인지에 따라 처방이 달라집니다.
처방은 크게 보기, 보혈, 보양, 보음으로 나뉩니다. 각각 기, 혈, 양기, 음기를 보완한다고 보면 됩니다.
 
'보기'는 기가 부족해 의욕이 생기지 않고 조금만 활동해도 쉽게 지치는 경우를 말합니다. 똑같이 기력이 없고 피로해도 육체적으로 무리하거나 체력 소모가 많아 기운이 없을 때 처방합니다.
'보혈'은 몸안에 진액이 부족한 상태일때 처방하는데요, 진액은 혈액을 비롯한 몸 속 체액이라고 보면 됩니다. 침, 눈물 등 체내 분비액이 부족해 입과 눈이 마르고, 어지럼증이 동반되는 경우 해당합니다. 여성의 경우 생리양이 많아 혈결핍성 빈혈 상태일 때가 대표적입니다. 전반적인 영양상태가 부족한 경우도 보혈이 필요한 경우입니다.
반면 '보양'은 보기의 증상에 추가해 몸에 온기가 부족한 경우에 처방하는데요, 손발이 차거나 추위를 많이 타고 혈액순환이 잘 안 될 때 필요합니다. 또 '보음'은 보혈 증상과 함께 체온은 정상이지만 열이 오르는 느낌이 동반되는 경우 처방됩니다. 보기·보혈이 필요한 상태보다 더 안 좋아졌을 때 필요한 게 각각 보양과 보음이라고 보면 됩니다.
 

보기·보혈에 덧댄 처방 보양·보음
당연히 각 처방에서 중요한 핵심 약재가 있습니다. 
우선 보기의 대표적 약재는 인삼황기가 있습니다. 원래 인삼 자체가 원기를 보하는 효과가 강합니다. 여름 복날에 삼계탕을 많이 먹는 이유도 바로 땀을 많이 흘려 빠져나간 기운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죠. 또 황기는 땀 등으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인삼이 에너지를 공급하는 차원이라면 황기는 새는 에너지를 차단하는 셈이죠.
보혈에서는 당귀가 핵심입니다. 당귀는 몸에서 혈액 등 진액을 생성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빈혈이 있거나 이로 인해 어지럼증이 있는 경우 당귀를 많이 씁니다.
보양에는 육계부자를 쓰는데요, 이들 약재의 성질 자체가 따뜻한 성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손발, 아랫배 등이 찬 경우 육계와 부자를 많이 씁니다. 보음에서는 음기를 보강해주는 것으로 유명한 숙지황이 핵심 역할을 합니다. 한의학에선 음기와 관련된 장기를 신장(콩팥)으로 보는데, 숙지황이 신장 기능을 보강해주는 대표적인 약재입니다. 결국 보양과 보음에는 각각 보기와 보혈의 처방이 덧대지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피로가 초기증상인 질환 꼭 점검해야
보약은 언제 필요할까요. 식습관을 포함한 생활습관 개선에도 불구하고 기력·의욕 저하 등의 상태가 2주 이상 장기간 지속될 때 필요합니다. 또 미리 대비하는 차원에서 처방하기도 합니다. 원래 계절에 따라 반복되는 질환이나 증상이 있고 허약한 체질의 경우 미리 보약을 먹게 되면 취약해질 시기를 잘 넘길 수 있다고 하네요. 월동준비와 비슷한 개념으로 보면 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질환이 있는 경우인데요. 피로감 등의 원인 질환이 있는데 이를 등한시하고 보약에 의존하는 경우는 경계해야 합니다. 당뇨병, 갑상샘질환, 결핵, 간질환 등도 피로감을 동반하게 되는데 이때는 무엇보다 질환 치료가 우선입니다.
과한 섭취도 금물입니다.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은 양기를 돕는 약재를 과하게 섭취하면 피부에 가려움증이나 가벼운 두통, 두근거림 등의 증상이, 몸이 찬 사람은 음기를 돕는 약재를 과하게 복용하면 설사, 소화불량 등 소화장애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특히 혈전용해제 등 약재를 장기간 복용하는 사람은 한약에서 어혈을 풀어주는 약재가 들어간 약을 먹으면 혈전용해제 작용에 더해져 출혈 상태가 쉽게 생길 수 있고, 혈당이 높은 사람은 소화흡수력을 돕는 일부 한약을 먹을 경우 혈당 조절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반드시 한의사의 처방에 따라 섭취해야 합니다.
 
양약은 보통 식후 30분에 먹는 경우가 많죠. 반면 보약은 식후 1시간이나 식전에 먹는 것을 권유합니다. 장이 어는 정도 비어 있는 상태에서 약의 흡수율을 높이기 위함이죠. 다만 성질이 강한 약재가 들어간 일부 약은 위장, 점막에 자극을 줄 수 이어 식후 30분에 바로 복용하도록 권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따라서 보약도 복용 시간, 복용법도 처방에 따라 정확히 인지하고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약(한약) 오해와 진실
▶보약 잘못 먹으면 머리카락이 하얗게 된다?
익숙한 말일텐데요, 숙지황이 들어간 처방약을 복용하면서 무를 먹으면 머리카락이 하얗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숙지황은 보음하는 약재고 무는 양기가 많은 식재료라 함께 먹으면 약효가 반감되는 상황이 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과는 무관합니다.
 
▶보약 먹으면 살찐다?
이 또한 대표적인 오해인데요. 한약에도 탄수화물과 전분이 포함돼 있어 칼로리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전체 칼로리에 비해 상당히 미미한 수준이죠. 물론 살이 찔 수는 있습니다. 가령 마르고 소화가 잘 안되던 사람이 상태가 개선되면서 먹는 양이 많아지고 영양분 흡수가 잘 되면서 살이 붙을 순 있지만 이는 보약 때문이 아니라 몸 상태가 좋아져서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면 됩니다.
 
▶보약 먹으면 간기능이 나빠진다?
부자·감수·대극 등 한약재에도 약성이 좀 강한 것이 있습니다. 또 일본에서 황금이라는 한약재를 사용할 경우 간수치가 조금 상승한다는 보고가 있긴 합니다. 특히 동물성 약재 중 반묘·섬수 등은 약성이 강해 양을 필요 이상 쓰면 피오줌이 생긴다고도 하지요. 하지만 이런 성분의 약재를 무분별하게 처방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간독성 문제는 한약재 유통에서 관리 부실로 농약·중금속 등이 일부 함유돼 초래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요즘 한의원·한방병원에선 철저한 관리 아래 엄선한 한약재를 써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도움말: 경희대한방병원 김영철(간장·조혈내과) 교수
 
※ 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약 이야기'에서 다루겠습니다.(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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