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이야기]꼭 식후 30분에 약을 먹어야 할까?

[김선영 기자] 입력 2018.05.25 17.56

#33 올바른 약 복용 시간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어르신, 이 약은 식전에 드셔야 해요’ ‘학생, 이 약은 많이 졸리니깐 자기 전에 먹어요’. 병원·약국에서 약사가 환자에게 약을 줄 때 강조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복용 시간인데요. 식후·식전·취침 전 등 제각각입니다. 약은 종류나 특성에 따라 적절한 복용 시간이 있습니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약의 효과는 줄고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지키는 것이 좋습니다. 이번 약 이야기 주제는 ‘올바른 약 복용 시간’입니다.
 

약의 복용 시간은 크게 식후·식전·취침 전으로 구분합니다. 식후에 먹어야 할 약은 뭘까요. 우리가 먹는 약은 체내에서 흡수, 분포, 대사, 배설 등 4단계를 거칩니다. 약물이 몸 속에 들어가면 위·소장 등 소화관을 통해 체내에 흡수된 뒤 혈액으로 이동합니다. 약물은 혈류를 따라 전신에 분포되는데요. 이때 간으로 이동한 약물은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는 대사 과정을 거쳐 소변·대변·땀을 통해 몸 밖으로 빠져나갑니다. 
 

흡수 단계에서 약 성분은 자칫 위 점막을 자극해 속이 쓰린 증상을 유발하는데요. 식후에 약을 먹으면 음식이 위 점막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 속쓰림 증상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약은 식후에 먹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소염진통제(이부프로펜·디클로페낙 성분), 철분제, 무좀치료제(이트라코나졸 성분)는 위벽의 보호층을 얇게 만들 수 있습니다. 공복에 먹으면 위장장애를 일으키기 쉽기 때문에 식후에 먹는 것을 권합니다. 
 
음식물이 있을 때 약 효과가 높아지는 약도 있습니다. 비만치료제(오르리스타트 성분)인데요. 이 비만약은 섭취한 음식의 지방 성분이 체내에 흡수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의약품입니다. 약효를 높이려면 약을 밥 먹는 도중에 먹거나 음식물이 흡수되는 식후 1시간 이내에 복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약 복용법 가운데 요즘 이슈가 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꼭 식후 ‘30분’에 약을 먹어야 하느냐인데요. 그동안 ‘식후 30분’ 복용법이 불문율처럼 여겨졌습니다. 사실 여기에 대한 의학적 근거는 부족한 편입니다. 이 복약 기준을 따르는 해외 사례도 없죠. 의약품 관리를 관장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사항에도 이런 기준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 복용법이 일반화됐을까요? 
 
약은 규칙적으로 복용해야 약효를 발휘합니다. 약을 먹은 후 몸 속에서 유효 혈중 농도에 이르는 시간은 30분~2시간인데요. 이 유효 혈중 농도의 지속시간은 5~6시간입니다. 약이 흡수돼 몸 속에서 일정하게 약물 농도를 유지하려면 규칙성이 전제돼야 합니다. 수면 시간을 제외하면 일상에서 일정한 주기로 이어지는 것이 바로 식사입니다. 세 끼 식사 시간에 맞춰 잊지 않고 약을 복용하면 약효가 발휘되는 혈중 농도가 잘 유지될 수 있습니다. 
 
지금껏 ‘식후 30분’ 복용법이 강조됐던 건 결국 규칙적인 약 복용을 도모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식후 30분에 약을 먹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30분을 기다리는 동안 약 먹는 걸 깜빡 잊어버리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하는데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식사 직후에 먹는 것도 방법입니다.
 

식전에 복용해야 하는 약도 있습니다. 세 종류의 약이 대표적인데요. 골다공증치료제(비스포스포네이트계)는 오히려 음식물이 약 흡수를 방해합니다. 위에서 음식물을 소화시킬 때는 산성 성분의 효소가 활성화하고 소화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이 약은 산성 환경에 취약합니다. 가급적 빨리 장에 도달할 수 있도록 식사 한 시간 전 공복 상태에서 약을 먹는 게 좋습니다. 
 
위장약(수크랄페이트 성분)은 위장관 내에서 젤을 형성해 위 점막을 보호하는 약입니다. 식사 1~2시간 전에 복용하면 식사 후 분비되는 위산과 음식물에 의한 자극으로부터 위 점막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당뇨병치료제(설포닐우레아계)식사 전에 미리 복용하면 인슐린 분비가 촉진됩니다. 식사 후 혈당이 급격히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약효를 높이거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잠자기 전에 복용이 권장되는 약도 있는데요. 변비약(비사코딜 성분)은 복용 7~8시간 후 약효가 나타납니다. 잠들기 전에 복용하면 아침에 배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재채기·코막힘, 가려움, 눈 따가움 등 알레르기성 비염 치료에 사용되는 항히스타민제는 먹으면 졸립니다. 약을 먹은 후 운전하거나 기계를 조작하면 사고가 날 위험이 있어 취침 전에 복용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고지혈증치료제(심바스타틴 성분)는 몸 속에서 콜레스테롤을 합성하는 효소에 작용해 합성 자체를 막습니다. 일반적으로 콜레스테롤의 합성은 자정에서 새벽 2시 사이에 가장 활발히 이뤄집니다. 저녁에 약을 먹으면 약효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 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약 이야기'에서 다루겠습니다.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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