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이야기]임신이라고요? '이 약' 절대 만지지 마세요

[윤혜연 기자] 입력 2018.03.23 18.08

#24 임부 금기 약물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임신을 축하합니다. 이제 새 생명을 뱃속에 품었으니 음식이나 약물처럼 내 몸에 들어가는 모든 것에 조심해야겠지요. 그런데 어떤 약물은 손에 닿는 것조차 위험합니다. 먹지 않더라도 약물 성분이 피부·호흡기를 통해 체내로 흡수돼 유산이나 기형아 출산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임부들이 ‘먹는 약’은 조심하지만 ‘만지는 약’의 위험성에 대해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번 약 이야기에서는 가임기 여성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할, 먹거나 만지면 안 되는 ‘임부 금기 약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임부는 어떤 약이든 조심해야 하지만 그 중 원칙적으로 투여를 금지하는 약이 있습니다. 그 기준은 미국 FDA(식품의약국)의 임부 약물 5등급 국내 DUR(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의 임부 금기 등급을 따릅니다. 예를 들면 이상지질혈증 치료제인 아토르바스타틴, 혈액응고제 와파린, 관절염치료제 메토트렉세이트 등이지요. 임신을 확인했다면 복용을 중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임부 금지약 중에는 투여는 물론 만지는 것조차 태아에 위험한 약이 있습니다. 피부에 닿거나 호흡기를 통해 흡수될 경우 유산이나 기형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그림에서 보듯 임부에게 ‘가장 위험한 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임부가 만지면 위험한 약을 예로 들면 일부의 여드름 치료제, 전립선 비대증 및 탈모 치료제, C형 간염약, 혈압약 등이 있습니다. 이 중 제형 특성상 잘 녹아 손에 묻거나 공기에 날려 코로 들어갈 수 있는 약일수록 주의해야 합니다. 말랑말랑한 캡슐에 쌓인 연질캡슐약과 손톱으로 긁으면 긁히는 코팅되지 않은 약, 조각으로 잘려진 약, 가루약의 위험도가 가장 높습니다. 반대로 단단한 상·하 캡슐에 싸인 경질 캡슐약과 코팅약은 한 겹 더해진 보호막 덕분에 임부가 실수로 만지더라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입니다. 그러나 이 약 역시 물 묻은 손으로 만지면 코팅 소재가 벗겨지며 안의 내용물까지 묻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합니다.
 

먹어서도, 만져서도 안 되는 약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탈모치료제로 쓰이는 피나스테리드(상품명: 프로페시아·프로스카 등) 계열의 약물은 임부에게 절대 금기 약물입니다. 피나스테리드는 전립선 비대증 치료에 알약으로 처방됩니다. 4분의 1조각으로 부숴 탈모에 처방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조각난 약은 임부가 절대 만져서는 안됩니다. 피부로 흡수돼 태반을 통과하면 태아에게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여자 아이인 경우는 관계 없지만 남자 아이인 경우 성기 형성이 제대로 안 될 수 있다고 보고됩니다. 조각 난 피나스테리드를 만졌다면 1개월 이내에는 임신을 피해야 합니다. 손에 닿자마자 비누를 이용해 손을 씻기를 권합니다. 대신 이 약을 복용한 남성과 성관계(정액)를 통해서는 태아에게 영향이 없는 것으로 보고됩니다.
 
▶남성호르몬 성분인 테스토스테론 겔(상품명: 테스토겔·안드로론겔 등) 역시 임부가 만지면 안됩니다. 이 약은 남성 호르몬 부족으로 인한 성기능 저하, 불임증, 갱년기 장애 등을 치료하기 위해 처방합니다. 약물 오남용이 우려되는 약이기도 한데요. 근육을 키워 ‘몸짱’이 되고 싶어 몰래 구해 바르는 남성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여성들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합니다.
테스토스테론 겔은 남성의 허벅지 안쪽에 바릅니다. 임신한 여성이 이 겔을 바른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등 맨 살이 닿게 되면 해당 성분이 피부로 흡수돼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태반을 통과해 태아의 성기 기형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테스토스테론 겔을 바른 남성은 집안에서 긴 바지를 입도록 권합니다. 임부가 테스토스테론 겔을 짜서 직접 만지는 것은 더 위험합니다.
 

▶C형 간염 혹은 에이즈 치료약인 리바비린도 매우 위험한 약입니다. 임부가 이 약을 만졌을 때 태아의 세포 분열을 억제해 유산할 위험이 높습니다. 죽지 않더라도 기형아 출산의 우려가 큽니다. 임신 가능성이 있는 약사들이 이 약을 조제할 땐 장갑을 두 개나 겹쳐 끼도록 권할 정도입니다. 임부는 물론 임신 가능성이 있다면 알약 자체도 만져서는 안됩니다. 만약 C형 간염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집중적인 약물 치료를 마친 뒤 6개월 후부터 임신을 시도해야 안전합니다.
 
▶피지 분비를 억제하는 여드름 약인 이소트레티노인임신 계획 한달 전부터 복용을 중단해야 합니다. 당연히 만져서도 안되지요. 주로 연질캡슐 형태라 녹으면 외부로 흐르기 쉽고, 피부로 흡수되면 태반을 통과해 태아에서 기형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임신을 확인했다면 먹지도 만지지도 말아야 합니다.
 
▶스타틴 같은 이상지질혈증(콜레스테롤) 약 역시 임부 복용 금지 대상입니다. 콜레스테롤은 태아의 호르몬과 세포막 형성에 필수 물질이기 때문에 콜레스테롤 생성 억제제를 먹으면 태아의 정상적인 발달이 어려워 집니다. 위에서 언급한 약보다는 만졌을 때 태아에 미칠 위험성이 낮다고 보고 되지만 엄마가 조심할수록 태아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임신 중이라고 모든 약을 피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통증을 지나치게 참는 것 또한 태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임신 기간 중 가장 흔히 겪는 증상으로 감기와 두통, 소화 불량, 입덧을 꼽을 수 있습니다. 임부에게 진통제가 필요할 땐 아세트아미노펜을 권합니다. 단 필요할 때만 단기간, 저용량으로 복용해야 합니다(타이레놀의 경우 500㎎). 입덧이나 구토 증상에는 피리독신이나 생강캡슐을 권합니다. 소화가 안되도 까스활명수나 베나치오 같은 드링크제는 피하는 게 좋습니다. 과량 복용 시 현호색이라는 한약재가 자궁 수축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됩니다. 불편한 속을 달래기 위해 미국 의사들은 입덧하는 산모에게 사이다(탄산 음료)를 권하기도 합니다.
 
도움말: 대한약사회 지역의약품안전센터 운영자문위원 엄준철 약사
 
※ 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약 이야기'에서 다루겠습니다.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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