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이야기]내게 같은 약이 이중으로 처방된다면?

[류장훈 기자] 입력 2018.03.16 17.56

#23 중복 처방의 위험성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중복'이라는 단어는 보통 '무의미'와 동일시되곤 합니다. 약에서는 그 의미가 좀 달라집니다. '중복 처방'은 비슷한 성분의 약을 일정 기간 여러 개 처방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이 경우 '위험성'을 내포하게 됩니다. 환자가 '필요 이상의 약'을 복용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약이야기 주제는 바로 약 부작용 위험을 높이는 '중복 처방의 위험성'입니다.
 

우선 질문 하나 해보겠습니다. 환자는 자신에게 어떤 약이 중복으로 처방된 경우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십중팔구는 모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환자는 자신에게 약이 처방됐을 때 그 처방을 신뢰합니다. 내게 지금 필요한 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설사 효능이 같은 약을 또 처방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중복 처방'이라고 인식하기 보다 '(필요에 의한) 추가 처방'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환자 자신이 걸러내기는 어렵다는 얘기죠.
 

그러면 진료 현장에서 중복 처방이 왜 발생하는 걸까요. 그 과정을 크게 네 가지 경우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투여기간의 중복입니다. 어떤 만성질환자가 다니던 병원을 바꾸고 장기간 처방을 받게 되면 동일질환인 이상 비슷한 약을 처방받기 마련입니다. 기존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의 투여기간이 종료되기 전에 다시 처방을 받게 되는 겁니다. 물론 이 경우, 환자 자신이 '같은 약'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이중 복용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환자가 기존의 약은 더 이상 먹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두 번째는 앞서 언급한 추가 처방의 개념입니다. 어떤 질환과 증상으로 약을 복용 중인데 나아지지 않아 추가로 같은 성분의 약을 처방하는 것입니다. 용량을 늘리는 개념이지요. 이때는 중복 처방 사실을 의사도 알고 환자도 압니다. 문제될 것은 없는 중복 처방입니다.
 
세 번째는 다른 질환 간 처방입니다. 경계해야 할 중복 처방 사례입니다. 다른 질환으로 다른 진료과에서 처방받은 약 사이에 동일한 성분이나 효능의 약이 처방된 경우입니다. 가령 비뇨기과에서 처방하는 전립선비대증 치료제 중 알파블로커 계열의 약이 있습니다. 근데 이 약 중 일부는 혈압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습니다. 고혈압치료제이기도 하죠. 이 약을 고혈압 환자가 먹으면 기존 약에 더해 혈압을 이중으로 떨어뜨려 저혈압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물론 중복 처방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은 있습니다. '의약품 처방조제 지원시스템(DUR, Drug Utilization Review)'이라고 합니다. 약물의 오남용을 예방하기 위해 마련된 시스템이죠. 동일한 성분의 약이 투여기간이 겹쳐 처방되면 그 처방을 한 의사가 동일한 의사든 다른 의사든 전산상 경고가 뜹니다. 대부분의 중복 처방은 이 시스템이 걸러줍니다.
근데 여기엔 맹점이 있습니다. 완전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같은 성분의 약은 걸러줄 수 있지만 같은 계열의 약은 걸러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중복 처방이 발생하는 네 번째가 같은 계열의 약 처방입니다. 약의 성분은 계열의 하위 개념입니다. 같은 계열에도 여러가지 성분의 약이 있죠. 효능이 같은 약을 걸러주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 의사는 이렇게 비유합니다. "한 마트에서 A라는 라면을 사고 다른 마트에서 B라는 라면을 사면 이건 걸러 주지만, 똑같은 식사 대용이라도 한 마트에서 라면을 사고 다른 마트에서 빵을 사면 걸러주지 못한다“
 

이런 허점 때문에 중복 처방 사례는 여전합니다. 실제 79세 김모 씨의 경우 S가정의학과의원과 Y의원에서 각각 60일분과 14일분의 고혈압치료제가 처방됐습니다. 혈압약으로 쓰는 이뇨제, 맥박수 낮추는 약, 칼슘길항제 등 혈압약만 4가지가 처방됐고 각각 용량도 많았습니다. 당연히 환자는 저혈압과 어지럼 증세로 병원에 실려왔습니다. 유사한 사례는 많습니다.
 
더구나 DUR은 처방약만 대상으로 합니다. 처방 없이 약국에서 구입해 먹는 일반약, 한의원에서 지어먹는 한약, 건강을 챙기기 위해 먹는 건강기능식품은 걸러지지 않습니다. 이들 약과 건기식도 특정 약물과 상호작용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약은 효능뿐만 아니라 부작용까지 부른다' '약의 부작용은 작용에 비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약의 가짓수가 많아질수록 부작용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하죠. 전문가가 처방하는 약이라도 주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1. 복용 중인 약 파악하기
무슨 질환 때문에 약을 먹고 있는진 알지만 어떤 약(성분)을 얼만큼(용량), 얼마나(처방기간) 먹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이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2. 담당의사에게 알리기
복용 중인 약에 대해 정확히 알았다면 진료 시 이를 의사에게 알려야 합니다. 같은 질환으로 처방받든, 다른 질환으로 처방받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야 DUR로 걸러지지 않는 중복 처방을 줄일 수 있습니다. 단, 처방약뿐만 아니라 일반약?건기식?한약까지 상세하게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약 대신 처방전
약 이름이 어려워 외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먹고 있는 약을 봉지 째 의사에게 내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의사가 약의 모양만 보고 어떤 약인지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약을 갖고 가는 건 큰 도움이 안 됩니다. 따라서 기존의 처방전을 의사에게 제시하는 것이 가장 현명합니다. 환자용 처방전을 따로 받지 못했다면 약 정보가 담긴 약 봉투를 보관했다 이용합니다.
 
4. 가급적 한 병원 다니기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의 경우 여러 병원을 다니는 것보다 한 병원을 다니는 것이 좋습니다. 일반적으로 같은 병원이라면 다른 과에서 처방받은 약이 전자의무기록에 뜹니다. 이를 의사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DUR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 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약 이야기'에서 다루겠습니다.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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