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째고 하셔도 됩니다, 싹 없애 주세요"

[박정수] 입력 2017.12.27 18.02

갑상선암 명의 박정수 교수의 [병원에서 주워 온 이야기]

어제 저녁 회진 시간, 3동 7층 외과 병동을 도는 중 병실이 아닌 병동 복도에서 환자와 마주친다. 회진을 인도하는 전공의가 "어? 우리 환자 같긴 한데...." 한다.

환자를 병상 외의 장소에서 만나게 되면  긴기민가 애매한 표정으로 보고하는 수가 많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환자가 먼저 인사를 하며 다가오자 내일 수술예정인 우리 환자라는 확신이 선다.

의무기록을 보며  환자에게 내일 수술범위에 대하여 설명하려고 하자 환자가 먼저 부탁을 해 온다.

최소침습기법으로 반절제 해달라고 하겠지 생각하고 있는데 의외의 말을 한다.
"교수님, 내일 제 수술은  아예 전절제로 해주세요"
"어?  왜요?"
"저의 엄마가 3년전에 미분화 암으로 돌아 가셨거든요"
"아, 네, 네, 그러면 원하는대로 해드리겠습니다, 사실 반절제를 해야 하나 전절제를 해야 하나 고민이 많이 되었거든요, 환자분이 먼저 그렇게 말하니까  마음의 부담이 확 줄게 되었습니다"

환자는 지난 9월 하순에 타병원에서 갑상선유두암 진단을 받고 필자를 찾아 왔다.
우리 병원에서  시행한 초음파병기검사에는 1.6cm 크기의 눈폭풍(snowstorm)결절
왼쪽 갑상선엽 꼭데기 근처 뒷쪽 피막을 깔고 앉아 있고  , 이 눈폭풍의 핵에서 미세한 석회화 알갱이들(microcalcifications)이 그 주위의 갑상선 실질에 흩어져 있다. 미만성 석회화변종 유두암인 것이다.  미만성석회화 변종유두암라면
초반 부터 잘 퍼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림프절 전이율이 전형적인 유두암보다 2배 잘하고(80% 대 43%), 피막밖으로  잘 퍼져 나가고(40%), 폐, 뼈, 뇌등 원격장기 전이율도 높다( 평균 5% 정도).

근데 이 환자는 좌측 기도-식도 협곡을 따라 전이가 의심되는 림프절이  0.4~0.5cm 크기로 4개가 보이는 것외에는 별 이상이 보이지 않는다. 식도-기도 협곡의 림프절들이 전이가 아니거나 2~3mm의 작은 전이라면 좌측반절제술을 해도 될 것이다.

드디어 환자가 8호 수술실로 입실한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을 터이지만 담담한 표정이다. 환자를 앉힌 상태에서 반절제를 대비한 피부절개 디자인을 하고 있는데 환자가 말한다.

"교수님, 크게 째고 하셔도 됩니다. 싸악 깨끗이 없애 주셔요"
"아, 어머니 때문에 그런 생각하는 군요.  좋습니다. 그렇게 말해 주니까 마음이 편해집니다.

 첫 수술에서 전절제술로 확실히 없애주고 수술후 방사성 요드 치료까지 해서 안심하고 사는 게 좋은 거지요.  아이는 몇이나 있어요?"

"8살 짜리 아들 하나요"
"한창 말 잘 안 든는 나이겠네....그래도 그놈 생각해서라도 오래오래 살아야지..."

수술은 목주름을 따라 횡으로 전통 절개선을 넣고 좌측 갑상선엽과 중앙경부림프절 절제술을 하고 이어서 오른쪽 갑상선엽까지 떼어 낸다.

보통 때 같으면 긴급조직검사해서 림프절 전이가 있는지, 있으면 크기가 어떤지 확인하고 전절제 또는 반절제를 하게 되는데  이 과정이 생략되니까 시간이 훨씬 단축되어 에헤라디야가 된다.

재발율을 낯추고 수술의 수월성만 본다면 전통적인 절개선과 전절제술이 가장 효율적이라 할 수 있다.

오늘 환자의 수술은 잘 되었다. 방사성요드치료까지 추가 하면 정말로 장기생존이 가능할 것이다.

오늘의 환자분은 미분화갑상선암으로 잃은 어머니를 옆에서 지켜본 가족으로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깊은 슬픔과 뼈아픈 고통을 겪은 사람으로서 갑상선암은 가볍게 볼 수 있는 암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으로 느꼈을 것이다.

초전박살을 했다면 평생을 잘 살 수 있었는데 이를 놓쳐 통한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래서 정작 본인이 수술을 받게 되자 예쁘게 작게 수술하는 것 보다  첫 수술에서 확실히 고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부탁을 했을 것이다.
"크게 째고 하셔도 됩니다, 싹 깨끗이 없애 주셔요"

저녁 병실 회진에서 만난 환자의 상태는 만족스럽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동안 마음 고생 많았습니다. 이제 안심하고 살아도 됩니다"

 환자의 얼굴에 떠 오르는 안도의 빛과 곧이어 보내 오는 므흣한 미소가 참 보기 좋다.


☞박정수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 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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