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고통 덜어줘 삶의 질 높이는 수술 고집

[류장훈 기자] 입력 2017.12.11 08.58

명의 탐방 분당제생병원 이영상 척추센터장

“나이 들어 굽은 환자의 허리를 굳이 꼿꼿하게 펼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는 정형외과 의사가 있다. 언뜻 환자에게 소홀한 의사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여기엔 몇 가지 가정이 전제돼 있다. 환자의 문제가 정말로 굽은 허리인지, 허리를 펴는 치료가 삶의 질을 고려한 최선의 선택인지 등이다. 속뜻을 들여다보면 ‘환자의 생활 패턴·요구·상태에 맞게 필요한 만큼 치료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분당제생병원 이영상 척추센터장의 진료 철학이다. 
 

이영상 척추센터장이 60대 퇴행성 척추전방전위증 환자에게 현미경 수술을 하고 있다. 환자 몸에 구조물을 넣지 않고 최소한의 수술로 통증을 없애는 것이 치료의 최우선 목표다. 김동하 기자

퇴행성 척추전방전위증 전문가
쇠 넣는 세계적 표준 치료 대신
황색 인대 제거하는 수술 시행

    
요즘 퇴행성 척추 질환 치료는 ‘비(非)수술’ ‘최소 침습’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요추간판탈출증(허리 디스크), 척추관협착증이 대표적이다. 심각한 환자를 제외하고는 웬만하면 ‘시술’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그런데 척추 질환 중에서 이런 추세와 다른 행보를 보이는 분야가 있다. ‘퇴행성 척추전방전위증’이다. 여전히 전통적인 치료 방식에 머물고 있다. 치료 방법은 과격하고 환자는 몸 안에 쇳덩이를 넣고 살아야 한다. 이영상 센터장은 퇴행성 척추전방전위증 치료의 환자 부담 최소화에 선도적 역할을 하는 의사다.
  
수술 다음 날 보행 

퇴행성 척추전방전위증은 나이가 들면서 척추가 받는 압력으로 관절이 변형되면서 척추 마디가 어긋나 앞쪽으로 밀리는 병이다. 이 과정에서 척추관 안으로 길게 뻗은 신경과 여기서 갈라져 나가는 신경이 눌려 통증이 생긴다. 척추관협착증 환자 중 절반은 척추전방전위증을 동반한다.
  
불안정한 척추를 단단히 잡아주는 치료가 세계적인 표준이었다. 현재도 통용되는 ‘유합술’이라는 수술법이다. 사다리 모양의 철제 구조물을 여러 개의 굵은 나사못으로 척추에 고정하는 치료다. 허리는 펴지지만 수술 과정에서 근육이 손상되기도 하고 출혈량이 많다. 회복은 더디고 환자는 허리에 벽돌이 붙어 있는 느낌으로 살아간다. 더 큰 문제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술 부위의 위 마디가 하나씩 망가지기 시작한다. 장기적으로는 척추가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이 센터장은 다른 치료 방식을 취한다. ‘반원형 후방 감압술(SCD)’이다. 척추가 밀리면서 척추관절 후방 안쪽에서 신경을 누르는 황색 인대를 제거하는 수술이다. 환자의 고통을 우선적으로 덜어주는 방법이다. 수술은 40분이면 끝나고 수술 다음 날부터 걸을 수 있다.
  
장기적인 효과도 확인했다. SCD를 받은 19명의 환자를 평균 37개월간 관찰한 결과 척추의 안정성이 유지되면서 VAS(환자 통증 척도)가 요통은 수술 전 6.3에서 수술 후 4.3으로, 하지방사통은 8.3에서 2.5로 감소했다. 최근엔 척추 두 마디에 걸친 전위증에서도 유사한 치료 결과를 확인했다. 이 센터장은 “척추 질환 중 척추전방전위증이 치료 시 쇠(구조물)를 가장 많이 넣는 질환”이라며 “척추의 불안전성이 있는 환자도 유합술 없이 좋은 치료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척추 안정성 향상 

이 센터장은 최근 이 치료법의 영역을 확장했다. 척추 양옆으로 신경이 갈라져 나가는 추간공에 협착이 동반된 환자에게도 적용했다. SCD에 ‘추간공 감압술(LF)’을 접목한 것이다. 이런 시도는 아직 학계에 보고된 바 없다. LF는 추간공 부위에 생긴 국소적인 신경 압박을 풀어주는 수술이다. 신경을 누르는 뼈를 미세하게 제거해 신경 통로를 확보한다.
  
이 센터장은 중심부 및 추간공 요추부 척추관협착증으로 진단받은 17명을 대상으로 SCD와 LF를 동시에 시행한 결과 환자의 요통 VAS는 7.1에서 수술 후 3.9로, 하지방사통 VAS는 평균 8.2에서 2.6으로 감소한 것을 확인했다. 기능장애지수(ODI) 역시 수술 전 평균 27.5에서 수술 후 11.8로 크게 줄었다. 특히 이런 결과들이 척추의 불안정성을 유발하지 않는 상태에서 나왔다는 것을 영상의학적 평가를 통해 확인했다. 환자의 몸에 쇠를 넣지 않겠다는 신념을 고수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센터장이 처음부터 이런 치료를 시도했던 것은 아니다. 그도 학계에서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을 따랐다. 인식이 변하게 된 계기는 있었다. 2004년 미국 시카고에 있는 러시-프레즈비티어리언 척추센터 장기 연수가 결정적이었다.

미국서 인식 전환 

연수 자체가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몸에 쇠를 넣는 것은 미국도 다르지 않았다. 전환점이 된 것은 당시 수술실 복도에서 마주친 동년배 일본 의사와의 만남이었다. 그 일본 의사는 척추 질환 치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노트북에서 자국 병원의 치료 사례에 대해 소개했다. 70~80%의 환자에게 구조물을 넣는 추세와 달리 90%의 환자에게 구조물 없이 환자의 관절을 살리는 치료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센터장은 처음에 믿지 않았다. 
  
2006년 한국에 돌아왔지만 머릿속에선 일본 의사의 말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해에 일본으로 건너가 그 일본 의사를 만나고 그의 스승으로부터 전에 들었던 접근 방식을 터득했다. 히로시마 시립 아사병원에서 미세현미경 척추수술 연수가 시작된 과정이다. 이 센터장은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직접 해 보니 몸에 아무것도 안 넣는 치료의 결과가 가장 좋더라”며 “아마도 복도에서 그 일본 의사를 만나지 않았으면 지금도 열심히 환자 몸에 쇠를 넣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웃었다.
  
그는 줄곧 환자의 허리를 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환자가 힘들어하는 부분이 뭔지 알고 그걸 부담 없이 고쳐주는 것, 그것이 그가 말하는 척추 질환에 대한 최선의 치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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