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 꼭대기 암은 옆 목 림프절로 잘 퍼진다

[박정수] 입력 2017.11.08 00.09

갑상선암 명의 박정수 교수의 [병원에서 주워 온 이야기]

아침 회진시간, 오늘 수술 예정인 25세 여자 사람 환자를 만난다. 아직 애띤 미혼의 예쁜 아가씨다.

지난 4월  H대학병원에서 왼쪽 옆목 맨 윗쪽에 생긴 밤톨만한 물혹을 제거 했는데 수술 후 난데없이 갑상선유두암이 림프절로 전이되어 온 것이라는 병리조직검사 결과가 나와 부랴부랴 갑상선 본체의 암을 찾기위한 여러가지 검사를 했는데 암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병원에서 또 검사를 했는데도 마찬가지로 갑상선암을 찾을 수가 없어 결국 필자를 찾아 오게 되었단다.

가지고 온 초음파와 CT스캔등의 영상을 면밀히 관찰해 봐도 역시 갑상선 안에는 암을 의심할 만한 소견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왼쪽 옆목에는 내경정맥을 따라 여러개의 전이 림프절들이 줄을 지어 레벨 2,3,4 지역을 점령하고 있다. 말하자면 암의 본부는 보이지 않고 본부에서 이탈한 암세포들이 내경정맥림프절들을 따라
지역부대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는 너무 작아 어디 있는지 눈에 띄지 않고 엄마 품을 떠난 자식들이 덩치가 더 커져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옆목림프절전이가 먼저 나타난 갑상선암이 여기에 해당된다. (Head Neck 1989;11(5):410~3), Laryngoscope 2000;110:204~9).

우리 병원에서 다시 찍은 초음파 스테이징 영상에는 옆목 내경정맥을 따라 레벨2, 3, 4에 전이가 의심되는 큰 림프절들이 보이고 왼쪽 갑상선 꼭데기 뒷쪽 피막근처에 1.9mm 결절이 보이기는 하지만 너무 작아  확실하지는 않다.

아가씨에게 말한다. "오늘 수술은 왼쪽 옆목 림프절 청소술을 하고 갑상선에는 현재 암덩어리는 보이지는 않지만 전절제술을 할 것입니다. 갑상선에 숨어 있는 작은 암이 옆 목으로 퍼졌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수술 예쁘게 해줄 거니까 너무 걱정 말고..."

"예,예, 잘 부탁드려요"

오래 전에 신촌에 근무할 때에도 비슷한 환자를 본 일이 있다.
젊은 남자환자였는데 오른쪽 옆목에 계란만한 물혹이 생겨 이비인후과에서 주사바늘로 물을 빼는 치료를 여러번 했는데 뽑고 나면 얼마안가 또 고이고 고이고 해서 결국 필자를 찾아 왔었다.  물혹의 내용물을 뽑아보니 초콜렛 색깔의
액체였다. 초콜렛색 액체에는 암세포는 보이지 않았지만 Tg(thyroglobulin)를 측정했더니 5,000ng/mL이상이 나와 역시 갑상선유두암이 전이 되어 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오후 시간, 환자가 준비실에 도착 했다고 연락이 온다. 바로 직전 케이스 수술이 끝나고 찾아 가 보니 어? 이 아가씨 보소, 눈이 벌겋게 되어 울고 있다.

"왜 우노? 내 잘해 줄께, 최대한 예쁘게 해 줄께, 서러워서 우나?"
"네, 서러워서요"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라, 잘 치료해서 보람있는 일 하면서 행복하게 살면 되는 기라"
"네,교수님"
"근데, 처음 발견은 지나 2월이라 했는데 왜 이제 왔노?"
"교수님 예약이 잘 안되어 빨리 볼려고 다른 병원 돌아다니다 그렇게 되었어요"

"원래 맛집은 기다리게 되어 있지..ㅎㅎ.."
"아참, 첫번째 병원에서 물혹에서 나온 액체 색깔이 혹시 초콜렛 색깔이었어?"
"네, 맞아요, 초코 색깔..."

수술은 왼쪽 옆목림프절 청소술을 하고  왼쪽 날개절제술, 중앙경부림프절청소술, 오른쪽  날개 절제술 순으로 진행한다. 지난번 타병원에서 수술했던 왼쪽 옆목의 레벨2 지역에 약간의 유착이 있었던 외에는 순조롭게 되어 깨끗이 끝난다. 떼어낸 왼쪽 갑상선 꼭데기를 면밀히 조사해도 맨눈으로는 암조직이 보이지 않는다.

신촌에 근무할 때 비슷한 케이스가 또 있었는데  그때는 수술 후  병리조직검사에서도 갑상선속에서 암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한 일이 있었다.

"그럴리가?" 병리교수에게  부탁하여  면밀히 다시 현미경검사를 하니까 겨우 1mm 크기의 암이 상갑상선 혈관과 갑상선 꼭대기가 연결되는 부위에서 발견된 일이 있었다. 이 부위의 암은 중앙림프절을 거치지 않고 바로 옆목림프절로 퍼지게 되어 있다(skip metastasis).

이와 같이 갑상선암은 초음파검사에서도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암이라도 위치에 따라 바로 옆목림프절로 퍼지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 환자도 병리조직검사실에서 현미경으로 면밀히 탐색해 보면 미세한 암이 갑상선 꼭대기에서 발견될 수 있을지 모른다. 어쨋든 암이 옆목 림프절까지 퍼졌으니까 고용량 방사성요드치료가 필요할 것이다.

 병실은 환자의 어머니가 지키고 있다.  환자상태도 좋다.
"수술이 만족스럽게 되었어요, 엄마가 속이 많이 상하지만 그래도 예쁘게 최소침습기법으로 수술했어요. 목가운데 피부를 피해 옆목 절개를 통해 말끔히 들어 냈지요.아무 탈없이 잘 회복해서 평생 잘 살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염려 안해도 됩니다"

이제야 환자도 어머니도 안도의 웃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참,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암도 이렇게 많이 퍼지니 정말 알다가도 모를 암이 갑상선암이란 말이야.

 뒷 이야기: 떼어낸 갑상선의 정밀 병리조직검사에서 2mm크기의 유두암이 왼쪽 갑상선 꼭대기에서 발견되었다.


☞박정수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 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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