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은 작을 때 작은 수술로 고치는 게 정답이다.

[박정수] 입력 2017.09.07 00.41

갑상선암 명의 박정수 교수의 [병원에서 주워 온 이야기]

이른 아침 병실 회진 시간, 오늘 수술할 20대 아가씨를 만난다. 피부가 하얀 미인 아가씨다.

병상은 비슷한 분위기의 엄마가 지키고 있다.

"에고, 환자가 어머니 연배 같아도 고민을 덜 할텐데 요렇게 예쁜 아가씨를 수술하려니까 훨씬 신경이 쓰이는 구만,  흉터 작게 예쁘게 해 주어야 하는데 오른쪽 옆 목 림프절이 커진 것이 마음에 걸리는데요"

암이 퍼져서 그런 것이라면 수술 절개선이 좀 길어 질 것이고, 아니라면 최소침습 작은 절개선으로 가능할거고......."
큰 수술이 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해 주는데도 이 아가씨는 별로 동요도 하지 않고 교수님이 알아서 잘 해주겠지 하는 표정을 짓는다.

이렇게 보석같은 딸이 수술을 받게 되면 어머니가 더 안타까워 하고 불안해 하는데 이 모녀는 속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겉으로는 그런 티를 내지 않는다.  의료진을 너무 신뢰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갑상선에 문제가 있다고 알았던 것은 2년전 지방 대학병원에서였다고 한다.

그 당시 세침검사에서 만성 갑상선염이 심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암이 있다는 진단은 받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별 걱정을 하지 않고 지내다가 지난 4월27일 규모가 작은 개인의원에서 다시 세침검사를 했더니 갑상선유두암이 양쪽 날개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가지고 온 초음파 영상에는 듣던 대로 심한 만성갑선염 소견이 양쪽 날개에 짝 깔려 있고 오른쪽 날개에 0.5cm, 왼쪽 날개에 0.6cm 크기의 전형적인 유두 암덩어리가 자리잡고 있다. 오른쪽 것은 앞쪽 피막을, 왼쪽 것은 뒷쪽 마의 삼각지 근처의 피막을 침범하고 있다.

좀더 암이 퍼진 상태를 알기 위한 초음파스테이징(ultrasonographic staging)과 CT스캔을 찍었더니 중앙경부림프절은 물론 오른쪽 레벨 3와 4 림프절들이 장난 아니게 커져 보인다.

"흠,  저놈들 위치 표시해서 수술할 때 체포해서 조사해 봐야 겠는 걸..."
수술실에서 닥터 김이 말한다.

"교수님, 혹시 만성갑상선염 때문에 커진 림프절이 아닐까요?"

그러면 얼마나 좋겠노. 간단히 최소침습으로 갑상선만 수술하고 나오면 이 아가씨한테는 만세 만세

에헤라디야지, 그래도 오른쪽 옆목림프절중에 커진 놈들을 체포해서 긴급조직검사실로 보내고 그 결과에 따라 수술범위를 결정하도록 하지"

수술은 우측 최소침습 절개선을 3.5cm길이로 디자인하고 옆목 청소술에 대비해서 더 옆으로 확장할 수 있는 절개 디자인선을 그려 놓는다.

3.5cm절개선을 통해 시야는 좁지만 오른쪽 레벨3과 4의 림프절중 커져 있는 놈들을 떼어 검사실로 보내고 갑상선 전절제와 중앙경부 림프절 청소술을 시행한다.

심한 만성갑상선염 때문에 조직이 굳어서 수술 조작과 지혈 작업이 어려웠지만 그럭저럭 갑상선 전절제술이 무사히 끝난다.

"이런 만성갑상선염이 심할떄 전절제를 하면 부갑상선 혈류가 나빠져서 저칼슘혈증이 잘 생기지. 손발에 쥐가 잘 나고.."

30여 분 후에 긴급조직 검사 결과가 컴터에 올라 온다. "레벨 3에 3개의 전이가 있음, 레벨 4에는 전이가 없음"

" 아이구, 할 수 없지, 오른쪽 옆목 청소술을 추가해야지, 뭐"
3.5cm 최소절개를 약 3cm  더 옆으로 확장해서 오른쪽 옆목 림프절 청소술을 추가로 해준다.

"하~~, 아깝다, 아까워, 2년전 그때 발견되었더라면 작은 수술로 해결되었을지도 모르는데.....

하긴 작은 암은 수술 안해도 된다는 망령이 날아 다니고 있으니 알았다 하더라도 수술을 안 받았을 수도 있었겠지.

그리고 이렇게 작은 암도 옆목 림프절로 퍼질 수 있다는 걸 일반 의사들은 잘 모르니까 말이지...."

 수술 후 찾아간 병실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딸을 지키고 있다.예쁜 딸의 목에 수술 흉터 만들어 준 것이 미안해서 변명하듯 말해준다.

"수술은  합병증 없이 깨끗하게 잘되었습니다. 절개선이 좀 길어 졌지만 그래 봤자 옛날 수술의 반 정도 길이 밖에 안됩니다. 나중에 레이져 치료등으로 흉터관리를 받으면 크게 실망은 안할 것입니다"

병실을 나서면서 혼자 생각에 빠진다.
"역시 암은 작을 때  작은 수술로 고치는게 정답이란 말이지...."

☞박정수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 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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