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건강, 지켜야 산다] #26 병원 갈 때 '쪽지'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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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노인 실태 조사(2014)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의 89.2%가 만성 질환을 앓고 있고, 1인당 평균 2.6개의 질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나이를 더해 갈수록 점점 병원에 갈 일이 많아집니다.
 
오늘은 ‘진료실’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보통 병원에 가면 접수를 마치고 의사와 5분 내외, 길어야 1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필요한 검사와 치료를 받습니다. ‘진료실에서의 5분’은 무척 짧지만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굉장히 중요한 시간입니다. 심지어 환자의 목숨을 좌우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환자에게, 특히 병원 방문이 잦은 노인에게 왜 진료실에서의 5분이 중요한 지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실버 건강, 지켜야 산다] 스물 여섯 번째 주제는 '병원 갈 때 쪽지가 필요한 이유’ 입니다.
 

평소 동네 병원이나 큰 대학 병원을 방문할 때 어떤 준비물을 갖고 가나요? 약간의 돈과 신용 카드, 대형 병원이라면 진료 카드와 동네 병원에서 받은 진료의뢰서를 갖고 갑니다.
 
중요한 준비물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쪽지’입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가 적혀 있어야 합니다. 첫째 환자가 현재 느끼는 증상, 둘째 예전에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던 이력, 셋째 현재 복용 중인 약물에 대한 정보입니다. 꼭 ‘쪽지’일 필요는 없습니다. 휴대폰에 입력해 놓고 보여 줘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정보를 모두 의사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정확한 진단은 안전한 치료의 첫 걸음
 
진료실에서 5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갑니다. 의사가 진단하는 과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환자가 “가슴이 답답하다”고 이야기하면 의사는 가슴 답답함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여러 질병의 목록을 떠올립니다. 심근경색 초기나 협심증 등이 있습니다. 의사는 환자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한 뒤 검사 결과 등을 고려해 목록을 줄여 갑니다.
 
이렇게 하나의 최종 진단명을 얻는 과정 또는 목록을 감별진단(Differential Diagnosis, DDx)이라고 합니다. 한 번의 진료로 진단되지 않거나 추가 검사가 필요한 경우 환자의 의무기록지에는 [DDx:A,B,C,D]라는 내용이 적힙니다. 현재 환자의 증상을 가질 수 있는 질환이 A·B·C·D 네 가지 정도이니 추가 검사를 해서 어떤 질환인지 가려 내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의사는 환자가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증상을 의학적으로 해석하도록 훈련된 전문가입니다. 정보를 잘못 주어 문제가 생긴다면 그 피해는 환자 본인이 입게 되겠지요.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의사의 질문에 논리 있게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즉석에서 대답한 정보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첫째, 현재의 증상은 숫자 중심으로 말한다
 
보통 진료실에서 받는 첫 질문은 ‘어디가 불편하세요’ 입니다. 현재 증상을 잘 설명하면 됩니다. 여러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났다면 어떤 순서로 나타났는지 말합니다. 이 증상들이 하나의 질환으로 연결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다음은 ‘언제부터’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 대답은 미리 생각해 보고 가는 게 좋습니다. 모든 질환이 마찬가지지만 특히 급성 질환은 증상의 시작 시기가 진단에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대답을 할 때 “좀 되었어요”라고 하는 환자도 많습니다. 정확하지 않은 대답은 진단을 어렵게 만듭니다. 의사가 추가 질문을 할수록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내가 궁금한 것을 질문할 시간도 줄어듭니다.
 
증상에 대해서는 ‘숫자’를 이용해 대답하기를 권합니다. “가슴이 답답하기 시작한 지 일주일 되었어요” 처럼 말입니다.
 

둘째, 과거 병력과 가족력은 미리 적어두기
 
과거력 역시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한 중요한 정보입니다. 과거력은 과거에 환자가 앓았던 질환과 가족이 앓았던 주요 질환(각종 암·심장질환 등)을 포함합니다. 나이가 많아져 건강의 역사가 길어질수록 언제 어느 병원에 왜 갔었는지 잊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기억에서 지워진 건강 정보들도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가령 한 노인이 고열과 전신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고 합시다. 과거력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의사는 감기 같은 일반 질환의 가능성을 먼저 생각할 것입니다. 만약 환자가 “예전에 신우신염을 앓은 적이 있다”고 말한다면 의사는 신우신염 여부를 알아보는 소변 검사를 우선 순위에 넣게 되겠지요. 신우신염은 진단이 늦어지면 신장 기능에 문제를 일으키고, 감염이 반복되면 만성으로 갈 수 있어 노인에게 위험한 질병입니다.
 
과거력의 내용이 길어 만만치 않겠지만 한 번만 시간을 내 어딘가에 적어놓으면 계속 추가하면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진단명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관련 증상이라도 적어 둡니다. 이 정보를 휴대폰으로 찍어 놓는 것도 좋습니다.
 

셋째, 복용중인 약·알러지 반응 물질을 기억하라
 
복용중인 약 역시 중요한 정보입니다. 우리가 먹는 약들은 약물상호반응으로 많은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우울증에 처방하는 페넬진(Phenelzine)은 진통제인 메타돈(Methadone)과 반응했을 때 저혈압·고열·어지러움, 심지어는 사망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학협회(IOM, 2000)는 미국 내에서 부정적인 약물 반응(Adverse Drug Reaction)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한해 7000명 정도라고 추정했습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미국에서 한해 10만 여 명이 약물 반응으로 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외래 처방전의 총 청구 건수가 약 2억6000만 건이라고 합니다. 국민 1인당 약 5번 정도 처방 받은 셈입니다. 2010년 분석 자료에 의하면 외래 약을 타간 65세 이상 환자 비중이 전체 환자의 약 11%이고, 이들의 약제비 비중이 약 32%였다고 합니다. 약을 많이 먹는 만큼 약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알아 두면 좋겠지요.
 
어떤 약을 함께 먹으면 위험한지 모두 알 필요는 없습니다. 판단은 전문가의 몫인 만큼 현재 내가 어떤 약을 먹고 있는지 알리는 것부터 실천합니다.
 
알러지 반응을 일으켰던 음식과 약에 대해서도 반드시 기억해 둡니다. CT검사의 조영제에 알러지 반응이 있다면 아나필락시스 쇼크(알레르기성 쇼크)로 기도와 폐가 부어 생사를 넘나들기도 합니다. 이를 모르고 다음에 똑같은 조영제 주사를 맞는다면, 그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아는 것, 반드시 모든 정보를 어딘가에 꼼꼼하게 기록하기를 권합니다. 일일이 기억하기 힘든 노인이라면 이번 주말, 자녀의 도움을 받아 정리하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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