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수술실은 두려운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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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미경의 병원 고치는 이야기

커다란 무영등을 중심으로 녹색 시트가 덮여진 높은 침대. 주변에는 차가운 은색의 수술도구가 보이는 공간. 이곳은 병원 안에서도 가장 은밀하면서도 긴장감이 넘치는 수술실이다. 긴박한 응급실처럼 아수라장은 아니더라도 생사의 갈림길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공간이다. 그래서일까. 수술실 디자인 의뢰가 들어올 때마다 늘 떠오르는 게 있다. 생과 사가 공존하는 ‘공간’은 어떤 곳일지, 그 공간의 신성함과 기능은 어떻게 구현할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수술실에서 음악을 틀어놓는 광경을 종종 보곤 한다. 그만큼 의사나 환자의 긴장감을 누그러뜨리고 집중력을 높이려는 것일 테다. 수술이라는 상황이 주는 압박감이 공간 전체를 짓누르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든 극복하려는 것이다.

 

그동안 수술실의 환경은 이렇듯 음악을 틀어놓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조치는 없었던 게 사실이다. 듣는 것까지 포함하여 크게 오감을 발휘할만한 디자인 요소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여전히 차디찬 수술도구들과 이제는 거대한 장비까지 들어차고 있는 수술실의 전경은 그곳의 사람들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오죽하면 가운과 마스크로 자신의 모습을 가린 의사들마저 기계 같은 모습으로 보일까. 내가 환자라 해도 수술실을 바라보는 심정은 두렵기만 할 듯하다. 이런 느낌이 비단 나뿐일까?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나 수술대에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누워있는 환자도 답답하고 두렵기는 매한가지이지 않을까.

 

나의 첫 수술실 리모델링

 

첫 수술실 작업을 할 때였다. 수술실을 ‘수술’하는 일은 굳이 비유하자면 심장이 떨리는 일이었다. 그때까지 해본 적도 없거니와 생명과 죽음의 경계라고 할 수 있는 공간에 손을 댄다니 떨릴 수밖에.

 

당시 기억나는 일은 수술실마다 그림 한 장씩을 배치한 것이다. 수술실에 그림이라니. 생뚱맞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의료진이 펼치는 최선의 노력과 집중의 시간이 치유의 손길로 만들어지는 순간을 상상했었다. 그 순간에 어떤 위압감이나 불안감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래야 병을 낫게 하겠다는 의료진의 마음과 숨결이 온전히 환자에게 전해지리라는 믿음을 공간에 드러내보였다.

 

나의 바람과 믿음은 다행이도 큰 성과를 가져다주었다. 그때 나는 ‘수술실다운 이미지라는 게 과연 있을까?’라는 생각을 품게 됐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환자에게는 위안을 주면서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는 모두에게 활력소가 되는 공간.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림은 각 실별 자동 도어가 필요하다는 요청을 들어주는 과정에서 배치했다. 기존의 낡고 지저분한 배선들을 안 보이게 마무리한 뒤에 그곳에 그림들을 넣어보았다. 파스텔 톤의 두 가지 색으로 벽체의 색을 지정한 뒤에 이곳에 어울릴 만한 배경의 실사 그림들을 커다랗게 배치했더니 공간의 이미지가 달라졌다. 주로 자연의 풍광을 담은 그림이었는데, 푸른 하늘이나 광활한 평원의 그림들은 보기만 해도 근심걱정을 덜게 해주는 듯했다.

 

“아니, 수술실에 뭐 그런 걸 붙여요?”

물론 처음부터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처음의 반신반의는 시간이 갈수록 어떤 그림을 가져다 놓을지 고민하는 상황으로 전개됐다. 3차 공사 때부터는 의사 선생님들의 취향에 따라 좀 더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좀 더 이국적인 건물이나 과감한 배경들로 꾸밀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전성모병원 수술실 디자인 2006 (사진출처 :위아카이)

 

수술실 공간디자인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수술실 설계에서 가장  주안점을 둬야 할 부분은 감염과 청결에 대한 것이다. 수술실에서 감염이 되는 바람에 입원기간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사망률이 11배나 증가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아무리 청결을 유지해도 먼지는 발생된다. 그래서 공기의 흐름을 조정하는 등 먼지를 제거하기 위한 장치는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커다란 조명 장치 위에 쌓이는 먼지 등은 골칫거리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새로운 조명과 공기 환기 시스템까지 다 새롭게 바꾸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처럼 기능적인 문제, 즉 보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과 청결의 문제까지 해결하는 것에만 몰두하면 뭔가를 놓치게 된다. 그 뭔가는 바로 ‘공감의 심리’다. 그 안에 머물 사람들이 가지는 심리는 간과하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더욱 메마른 정서의 공간으로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

 

수술실을 디자인하면서 놓치게 쉬운 게 마지막 마무리 과정에서의 단장이다. 기능과 청결에만 집중하느라 차디찬 금속재질로 둘러싸인 공간의 서늘함을 그대로 남겨 놓게 된다.

수술 부위 감염을 예방하는 데 구조는 중요한 요소이다. 수술실의 물리적인 환경과 환기는 병원균이 대기를 통과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많은 수술실이 천장에서 바닥으로 깨끗한 공기를 밀어내어 수술 부위에 오염된 공기가 닿지 않도록 하는 환기 시스템으로 설계되어 있다.

출처 https://www.fastcodesign.com/3041333/body-week/how-to-design-a-safer-operating-room

 

 

환자에게 안정을 주고 의사는 집중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수술실 리모델링은 감염의 위험을 제거하는 공간 만들기가 우선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첫 수술실 작업 이후에 나는 또 다른 숙제를 떠올리게 됐다. 앞서 말한 수술실 환경이 언제부터인가 눈에 들어왔다. 즉, 수술실이라는 공간이 의료진과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중 색채의 변화로 달라진 수술실의 환경들은 보는 이들뿐 아니라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곤 했다.

이 자료는 ADCUT사 바닥재 전문 회사의 홍보자료의 사례이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으로 환자들에게 두려움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수술실에는 필요할 것이다.

출처: http://adcut.net/sheet-goods-flooring/

 

최근 첨단장비로 시술을 하는 인터벤션병원 리모델링을 마쳤다. 이곳을 디자인할 때 이슈의 중심이 된 곳은 단연 수술실 공간이었다. 논의의 시작은 환자들이 수술실에 들어가는 순간부터였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과정이 이루어지는 공간에서 시작하여 의사와 스텝들이 일하는 환경까지 숱한 의견을 모으고 또 모았다.

시술 환경을 둘러싼 네 방향의 벽 처리도 미리 세밀하게 시뮬레이션을 거쳐 디자인을 했다. 사전에 충분한 리서치와 협의를 한 덕분에 수술실은 밝고 경쾌한 컬러로 완성됐다. 공간의 느낌은 한층 더 쾌적해졌고, 환자들은 수술실에 들어서는 순간에 긴장과 두려움보다 마음의 안정을 느낄 수 있게 됐다.

 

이곳 수술실은 각각 민트 계열의 색깔과 핑크색, 주황색 등이 벽면과 바닥에 칠해져 있다. 벽면의 색깔은 수술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 그중에서도 환자들의 심리적 안정을 고려하여 선별한 것이다. 바닥의 패턴은 장비의 이동이나 동선이 유도될 수 있도록 했다.

 

민트병원 수술실공간 (2017 위 아래 사진출처: 위아카이(주))

 

아무리 기능이 강조되고 신중을 요구하는 공간이라도 그곳은 사람이 머무는 곳이다. 시간이 갈수록 첨단 기계장비들이 공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겠지만, 의료공간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이 공간의 본질은 사람을 치유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성의 접근과 치유라는 관점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눈에 보이는 색상의 마감 패턴은 미적인 시각화 효과만을 기대하지 않는다. 색의 효용성을 활용하는 공간 설계는 치유와 시술의 효과를 높이려는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의 노력이다. 이러한 시도가 때로는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더욱 차디찬 금속재질, 즉 위생과 청결을 강조한 색감으로 만들어야 수술실의 본질에 가까운 게 아니냐는 반문도 있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기 싫은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다.

 

사람들의 굳어진 사고방식과 선입견의 틀을 깨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공간에 대한 사고는 콘크리트 벽면만큼이나 굳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용자, 즉 사람이 중심이 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진화는 끝이 없다. 진화를 위한 어떤 시도도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기에 보수적이고 변화가 쉽지 않은 의료공간의 환경을 바꾸는 일은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어야 한다. 물론 보수적인 분야라서 어려울 테다. 그러나 수술실을 비롯한 병원 공간은 사람의 저 깊숙한 마음의 상처까지 어루만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이 중심이 되는 디자인은 병원이야말로 꾸준히 이루어져야 한다.

 

 

글 노미경/

의료공간전문디자인회사 위아카이(주) 대표, 한국헬스케어디자인 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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