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시대가 도래했다는 걸 실감하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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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선암 명의 박정수 교수의 [병원에서 주워온 이야기]

 

 

어제(2월14일) 저녁 회진 시간, 필자의 의료진팀과 얘기를 나눈다.

"내일 수술 중 가장 중요한  86세 할머니 환자다. 우리 나이로는 87세나 되지.  옛날 같으면 이 정도 고령 환자는 수술할 꿈도 못 꾸었지,  환자나 환자 가족도 그렇게 생각했고 의료진도 수술하기를 꺼려 했고....., 이제는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아.

우선 환자들이 수술 받겠다 하는 의지가 강해졌고, 가족들도 적극적이 되었고, 마취나 수술 기술도 많이 안전해졌고...그래도 이런 고령 환자 수술에서 가장 많이  신경쓰이는 것은 역시 예기치 않은 심장마비나 호흡기능부전증, 뇌졸증같은 돌발사고가 일어 날 수 있다는 것이지,  수술 전 이런저런 검사는 다 통과 했지만 그래도 불안감을 떨칠 수는 없지....."


병실에는  할머니와 따님이 의료진을 기다리고 있다.

"아이고, 할머니 입원하셨네, 할머니, 내일 수술 잘 해드릴께요. 아무런 문제없이 잘 될 겁니다. 잘 회복하시기를 우리 기도 열심히 하도록 해요"
"예, 예, 잘 부탁드립니다" 따님이 참 밝고 친근감이 느껴진다.


이 할머니 환자는 3~4개월전 우측 옆목에 멍울이 잡혀 지방 병원에서 세침 세포검사를 한 결과 갑상선유두암이 전이되어 온 것으로 밝혀져 지난 12월8일 필자를 찾아온 것이었다.

 

퍼진 정도를 알기 위한 초음파스테이징검사와 목CT스캔에는  아이쿠, 암이 많이 퍼져 있다.  갑상선 양측 날개에는 여러개의 암덩어리가 서로 엉켜 있고, 우측 측경부 레벨3와 4림프절들도 암이 전이되어 커져 있다.

 또  중앙경부 림프절(레벨6)과  상부종격동 림프절(레벨7)에 해당하는 부위에도 전이 림프절들이 여러 개가 보인다.

 

오른쪽 총경 동맥 뒷쪽에 있는 림프절은 땅콩알 만큼 커져 있다.

그리고 왼쪽 폐의 상부에도 폐전이는 아닌 것 같은 데 1cm 미만의 작은 음영이 보인다. 호흡기 내과 협진에서는 일단 두고 보자고 했단다.

 

아침에 만난 흉부외과 이 교수도 동시에 수술하기에는 부담스러우니까 경과를 두고 보는 게 좋겠다고 한다.


14호 수술실, 수술 도우미 닥터 김과 얘기를 나눈다.

"고령 환자다, 수술시간을 최대한 짧게 해서 마취시간을 줄여야 한다. 노인네 혈압이 불안정해지면 안되니까 수술 때 출혈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할거야. 그러면서 수술은 빨리 빨리 해야하고........어렵다, 어려워...."

 

수술은 최소침습기법으로 우측 측경부 림프절 청소술(레벨2,3,4), 갑상선 전절제술, 중앙경부림프절 청소술(레벨6), 상부종격동 림프절 청소술(레벨7)순으로 정말 전광 석화식으로 진행한다.

 

수술은 큰 이벤트 없이 무사히 끝난다. 노인네한테 칼슘 부족이 생기지 않도록 부갑상선 보존에 온 힘을 기울이면서 말이지....


마취 회복실의 환자 상태는  만족스럽다.

그런데 어? 모니터에는 혈압이 198/100mmHg으로 너무 높다, 맥박도 110/min으로 너무 빠르다.

 

"마취과 교수님, 어떻게 좀 해보셔"
"네, 통증 때문에 그럴 수 있어요, 곧 처치 해드리겠습니다.  마취 시작 때는 200mmHg가 넘었는걸요"

 

"그러다가 사고 나지..... ...비행기 탈때 가장 위험한 시기는 이륙할 때와 착륙할 때라고 하는데, 마취도  시작할 때와 깨어날 때가 가장 불안정하지요?"

 

"맞아요, 맞아요, 이때 정신차리고 잘 봐드려야 ...."

"수술 시간과 마취 시간은 얼마나 걸렸어요? "

"아, 수술시간은 1시간35분이고,  마취 시작해서 회복 때까지 시간은 2시간 10분 걸렸어요, 엄청 빨리 수술을 했군요"

 

"고령의 노인수술은 오늘 같이 전광 석화 작전을 해야 하지요. 이 환자, 참 걱정을 많이 했는데 잘 회복할 것 같은데요"


저녁 병실 회진시간에 만난 오늘의 VVIP(very very important patient)인 할머니의 상태는 매우 안정적으로 보인다.

한국나이 87세로 보기에는 너무 정정하다.

"아이고, 할머니 좋으시네요, 따님이 적극적이어서 용기내어 수술해드렸지요"

"아니, 저 딸 아니고 며느린데요"

"네? 며느리라고요? 보통 며느리는 나이 많은 시어머니 수술에 적극적이 아니던데? 딸은 그 반대지만요 ㅎㅎ

얼마 전에는 82세된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수술해드렸는데 오늘 우리 할머니께서 최고령을 기록했네요"

 

고령 환자의 수술은  환자 본인의 의지,가족의 적극적인 후원 그리고 의료진의 용기가 맞아 떨어져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오늘 할머니 수술은 이런 바탕위에서 성공적인 수술이 된 것이다.

"할머니, 장사이십니다,잘 회복하실 겁니다" 하며 엄지척을 보내드리니 할머니도 웃는 표정과 함께 엄지척을 보내온다.

흐흐....정말 고령화 시대가 도래했다는 걸 실감하는구만 .

 

☞박정수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 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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