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빠지면 건강? 노인은 면역력 떨어져 병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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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건강 해치는 소식(小食)

 

‘나이 들수록 적게 먹어야 한다’ ‘고기보다 채식이 좋다’는 건 노인에겐 편견이다. 노년기에 저체중(BMI•체질량지수 18.5 이하)은 건강을 좀먹는다. 영양이 불균형해져 삼중고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김선욱 교수는 “면역력이라는 방패가 힘을 못 쓰고 병에 잘 걸린다”며 “회복이 더디고 사망에 이르는 비율도 높다”고 말했다. 먹을 것이 풍부하다지만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세 명 중 한 명은 하루에 필요한 에너지의 75%에도 못 미치게 먹고 있다. 70세 이상 노인 100명 중 4명은 저체중이다.

 

노인이 저체중이 되는 원인은 다양하다. 나이가 들면 치아가 불편하고 미각을 좌우하는 침 분비나 후각 기능이 떨어진다. 입맛이 없어진다. 소화흡수 기능이 떨어지니 몸에서 음식을 받아들이는 효율도 낮다. 병에 걸리면 회복 과정에서 에너지 소비가 많아지는 것도 이유다. 게다가 소식하고 채식하는 게 건강에 좋다고 하니 일부러 고기는 잘 안 먹는 경향도 있다.
 
과체중이 병에 더 잘 견뎌

 

체중이 덜 나가면 혈당과 혈압, 콜레스테롤 등 대표적인 건강 수치가 좋아질 순 있다. 하지만 만족스러워할 만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면역력이 낮아질 수 있다. 김선욱 교수는 “노인은 필요한 열량을 충분히 먹는 것이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며 “관절염을 일으킬 정도로 심각한 비만이 아니면 일부러 소식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노년기에 체중은 질병에 대항하는 능력을 가늠하게 해준다. 젊었을 때는 저체중과 과체중(체질량지수 23~24.9)의 사망 위험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50세가 넘어가면 저체중인 환자의 사망 위험이 과체중보다 3배 가까이 높다는 국내 연구가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활용해 고혈압, 당뇨, 심혈관계 질환을 가진 30세 이상 100만 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다.

 

연구를 진행한 고대안암병원 내분비내과 김신곤 교수는 “저체중인 사람은 병에 견디는 능력이 정상체중이나 과체중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감염 때문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김 교수는 “영양상태가 곧 면역력인데 영양이 불량하면 폐렴•신우신염 같은 감염 질환에 취약하다”고 말했다. 경희대병원 어르신 진료센터 원장원(가정의학과) 교수는 “횡경막과 늑간에도 근육이 있는데 저체중인 사람은 호흡근이 약해져 호흡기계 질환 때문에 사망할 위험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저체중이면 회복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한국뇌졸중재활코호트연구단(2015)에 따르면 65세 이상 뇌졸중 환자의 경우 과체중일 때 저체중보다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데 더 수월했다. 체중이 적당해야 에너지를 충분히 만들어내 일상생활로 빠르게 복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신곤 교수는 “저체중인 사람은 영양상태가 좋지 않을뿐더러 건강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어 평소에 운동도 잘 안 한다”며 “이렇다 보니 근육량도 적어 회복이 더딘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처 회복이 잘되지 않는 것도 저체중 환자의 발목을 잡는다. 김선욱 교수는 “영양이 충분해야 딱지가 생기면서 섬유화가 진행되고 상처가 낫는데 영양이 안 좋으면 감염만 잘 되고 상처가 덧난다”고 말했다. 원장원 교수는 “혈액순환이 안 돼서 생기는 욕창이 회복되는 것도 영양 상태가 좌우한다”고 말했다.

식사량이 줄면서 나타나는 또 다른 문제는 미세 영양소가 부족해지는 것이다. 노인에게서 부족한 대표적인 영양소는 칼슘과 비타민A•D, 리보플라빈, 티아민이다. 노인 중 다수가 필요한 양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게 섭취한다. 원 교수는 “미세영양소는 신경을 재생하고 혈액을 생성(조혈)하는 역할을 한다”며 “치매•신경염을 예방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식욕 없으면 복용약 점검해 봐야

 

노년기에 적정 체중을 유지하려면 밥상이 풍부해야 한다. 김선욱 교수는 “우리나라 노인은 고기를 먹는 것에 상당히 인색하다”며 “고기 좀 드시라고 권하면 다음번에 와서 꼬리곰탕이나 사골국을 열심히 먹었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런 국엔 사실 단백질이 거의 없다”며 “쇠고기•돼지고기•오리고기 가릴 것 없이 고기를 충분히 먹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고기를 잘 챙겨 먹어야 하는 이유는 단백질 섭취와 체중 유지에 효율적이어서다.

 

원장원 교수는 “노인은 젊은 세대와 다르게 고기를 먹어서 성인병에 걸리는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오히려 소화흡수율이 떨어져 근육을 만들 때 더 많은 단백질이 필요하기 때문에 섭취를 늘려야 한다. 원 교수는 “성인은 체중 1㎏당 단백질을 0.9g 먹으라고 권하는데 노인은 최소 1~1.2g을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체중이 50㎏이면 50g의 단백질을 먹으면 된다. 보통 고기 100g에는 약 20g의 단백질이 있다. 치즈 한 장(20g)에는 3g, 두유 한 컵(200㎖)에는 약 7g이 들어 있다.

 

질병이 있으면 더 잘 먹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회복 과정에서 필요한 단백질의 양이 1.5배 늘어난다. 김선욱 교수는 “심부전•간경화 같은 병이 있으면 밥을 잘 먹지 못하거나 염증 반응 때문에 영양 소모가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체중과 근육이 줄어들면 일상생활을 하거나 운동하는 게 힘들어져 회복이 늦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식사는 거르면서 합성영양제를 여러 개 챙겨 먹는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 원 교수는 “합성비타민을 과량으로 먹었을 때 부작용이 생긴다는 연구가 많다”며 “비타민A가 암을, 비타민D가 요로결석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노인은 식품으로 영양소를 챙기면서 보조제로 종합비타민 한 알 정도 챙겨 먹는 게 적당하다.

 

이유 없이 식욕이 줄어 밥 먹기가 힘들면 복용하는 약이 문제일 수 있다. 원장원 교수는 “일부 당뇨약과 심장약 중에는 식욕을 상당히 억제하는 부작용이 있다”며 “평소 식욕이 많이 떨어지면 다른 약으로 대체할 수 있는 만큼 의사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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