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100세 시대에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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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선암 명의 박정수 교수의 [병원에서 주워온 이야기]

18호 수술실, 오늘의 최고 VIP인 82세 할머니 환자가 옮겨져 온다.
 "아이고, 할머니 오셨네, 어제밤에는 잘 주무셨어요? 잘 주무시도록 처방해드렸는데..."
 "예, 잘 잤지유"
 "너무 걱정 마세요, 오늘 할머니 얼굴이 밝은 걸 보니 잘 될 것 같습니다. 안심하시고..."
 "예,선생님만 믿겠습니다"


이 할머니 환자분을 처음 본 날은 지난 10월 하순이었다.
몸집이 자그마하고 약간 마른 체형이다. 표정은 온화하고 항상 미소를 띄고 있다. 얼굴의 주름도 그걸 말해 주고 있다.
같이 온 가족들도 같은 분위기다. 틀림없이 화목한 가정일 거야 ...
가지고 온 초음파 영상을 보니까 오른쪽 갑상선 날개에 1.8cm크기의 결절이 갑상선 피막을 뚫고 오른쪽 총경동맥벽과 붙어 있다.
타병원 세침검사결과는 갑상선유두암이란다.
 '흠, 수술을 안해 드릴 수는 없겠군......근데 연세가 좀 ...'


 "할머니, 평소에 숨은 차지 않은가요? 계단 몇개나 올라 가세요?"
 "숨은 별로 차지 않아요. 몇층은 그냥 잘 올라 가는데요"
 "제가 봐도 건강하게 보입니다. 작년에는 85세 되는 분도 수술 받고 지금 잘 살고 계시지요. 할머니도 심장과 폐기능 검사가 괜찮으시면 수술해 드리겠습니다"

암이 퍼진 상태를 보는 초음파스테이징검사(ultrasonographic staging)와 목CT스캔은 더이상 퍼진 곳은 없다(T3N0) 하고, 폐CT, 폐기능검사, 심장기능검사등도 이상이 없다고 판정이 나온다.
그럼 수술 못할 것 없잖아....

일본은 현재 고령자가 갑상선암 에 걸리면 수술을 하지 않고 지켜보자는 견해가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이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이 100세 시대에 말이지.
일본친구들이 고령자에서 수술을 꺼리는 이유는 수술위험도가 높고 어차피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 고생시키고 비용드는 수술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것인데, 글쎄.... 당사자가 본인이라고 생각한다면 과연 그렇게 간단히 생각할 수 있을까?

고령자 갑상선암은 젊은 사람에 비하여 암이 자라는 속도가 다소 늦기는 하지만 암세포 자체는 더 악질적이서 예후가 더 나쁜 것이 사실인데(Endocr J 2014;61(3):205~13, Endocr J 2012;59(5):399~405) ,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단지 고령환자라 해서 수술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생명경외사상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일본의 갑상선암환자 사망율이 높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지 모르겠다.
마취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전신상태가 위험한 고령자는 할 수 없지만 말이지.....

수술전에 조수로 들어온 닥터 김과 얘기한다.
 "오늘 이 할머니 환자는 전광석화 전법 수술을 한다. 수술 시간을 최대로 단축한다는 말이지. 육안으로 보이는 림프절 전이가 없으면 우측 갑상선 반절제와 우측 중앙경부청소술만 한다. 림프절을 떼어서 긴급조직검사 결과
 기다리고, 그 결과 봐서 전이가 있으면 전절제수술로 확대하는 과정은 생략한다, 빨리 시작하고 빨리 끝내는 전법이다.
이렇게 해야 수술리스크를 최대한으로 피할 수 있다"
 "속전 속결이군요"

수술은 최소침습기법으로 오른쪽 반절제와 오른쪽 중앙 림프절 청소술을 전광석화처럼 재빠르게 진행한다.
할머니의 목이 가늘고 살집이 없어 총 수술시간이 30분을 넘지 않는다.
 "전광석화 수술일수록 지혈작업은 더 철저히 해야지...."
 "예, 깨끗합니다"

마취 회복실의 우리 할머니 상태는 양호하다. 목소리, 혈압, 맥박 다 좋다.
 "휴~~, 잘 회복하겠다"

병실 회진에서 만난 할머니는 역시 환하게 웃은 얼굴로 의료진을 맞이한다.
오늘 수술한 환자중 가장 안정적이다.
 "할머니, 아프지 않으세요? 오늘 아프고 내일 하루만 더 아프면 될 겁니다. 그리고 오래 오래 잘 사실 겁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교수님"
옆에서 간호하던 따님이 묻는다.
 "혹시 신지로이드 복용은 안 하나요?"
 "아, 나중에 갑상선피검사가 정상으로 나오면 복용할 필요가 없고, 좀 모자라면 고 만큼 보충하는 용량으로 드시게 할 것입니다"

병실을 나오며 전임의 닥터 김과 갑상선 전담 간호사 한나에게 말한다.
 "저, 할머니 웃는 모습이 참 보기 좋지? 저런 분이 오래 오래 장수할거야"
그렇지, 나이 많다고 아예 처음부터 포기하는 것은 죄악이지, 노인의 생명이라고 하찮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 100세시대에 말이지......

 

 

 

☞박정수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 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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